일본의 사카기바라 에이스케 전 대장성 재무관이 요미우리신문에 회고록을
연재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관료로는 드물게 뉴욕의 월가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인물
이었다.

회고록에서 그는 국제통화전쟁의 뒷얘기들을 풀어놨다.

한국이 국제투기자금(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은 것은 "인도네시아에
단기채권을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란 조지 소로스와의 대화도 소개했다.

주요내용을 정리한다.


<>사이버자본주의 =프랑스 아날학파의 거두인 페르난도 브로델은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는 그 중심이 변할 때 위기를 몰고 왔다. 대공황은 런던에서
뉴욕으로의 중심이동이었다. 현재 위기는 뉴욕에서 정체불명의 어딘가로 다시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그 정체불명의 장소가 사이버공간일 것이란 확신에 접근하고 있다.

하루에 1조5천억달러, 이틀반이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에 필적하는
자금이 거래되는 사이버세계로 경제중심이 이행하고 있다.

지난 몇년동안 세계가 경험한 금융위기는 사이버자본주의가 성립하는 과정의
"경련"이다.


<>공황의 갈림길 =98년 하반기 사이버자본주의는 세계를 공황 일보직전으로
몰고 갔다.

러시아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런던회의(98년9월14일)에서 서머스는 메모지를
건냈다.

"에이스케,세계는 지옥으로 향해가고 있어. 우리는 반드시 협력해야 한다네"
라고 적혀 있었다.

미국의 위기감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불능) 선언과 루블화절하(35%)는 자금흐름을
일거에 경색시키고 있었다.

조지 소로스가 20억달러의 손실을 입는 등 미국의 금융기관과 헤지펀드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다음날 파리행 열차에서 서머스와 2시간 넘게 대화했다.

월가의 참상, 일본금융의 위기, 브라질 등 중남미위기대책, 아시아에 대한
신미야자와구상 등.

일본금융이 불안했고 한발만 더 나가면 대공황이었다.

당시 위기를 계기로 일본의 채무초과은행을 신속히 정리하라고 요구하던
미국은 회생기미가 있는 은행에 공적자금투입을 서두르라는 쪽으로 돌아섰다.


<>헤지펀드의 공격대상이 된 아시아 =지난 97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금융 전장은 아시아와 일본이었다.

태국 인도네시아의 금융위기가 급속히 범위를 넓혀가면서 일본 은행들의
불량채권문제가 다시 부각됐다.

그해 8월 외국인들의 일본주식에 대한 투자는 순매도로 돌아섰다.

9월 홍콩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조지 소로스와 만나
아시아위기에 대해 대화했다.

나는 솔직히 놀랐다.

그가 "다음 타켓은 한국"이라고 주저없이 지목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에 융자액이 가장 많은 것이 한국의 은행들이며 특히 단기의
달러융자금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아마 당시부터 소로스나 다른 헤지펀드들은 한국공격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명확히 공격의 대상이 된 것은 산요증권 야마이치증권 등이
잇따라 도산한 그해 11월에 들어서였다.

구미은행들이 대출한도를 점차 줄여나가자 일본 은행들은 국제시장에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반면 외국의 금융기관들이 엔 자금을 조달할 때 금리는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

헤지펀드들은 엔 자금을 빌려 달러나 다른 통화를 사서 운용하는 장사에
열을 올렸다.

그때 나는 다보스국제회의에서 만난 돈부시 교수(미국 MIT대학)에게서서
"일본은 반사상태"란 진단을 들어야 했다.


<>미국의 모순 =98년 10월 3일 파이낸셜타임스는 구미의 연고자본주의를
비난했다.

루빈(당시 미 재무장관)이 월가의 금융기관을 불러 모아 러시아사태로
도산위기에 몰린 LTCM에게 36억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한 직후였다.

아시아적 자본주의라고 비난했던 연고자본주의를, 위기에 직면한 미국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메릴린치가 러시아에서의 한방으로 1억달러 이상의 손해를 봤다.

미국은 도미노를 막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러시아사태가 브라질로, 다시 중남미로 이어진다는 악몽에 시달렸다.

미국은 이미 98년 9월 브라질에 대한 금융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었다.

IMF를 통해 4백억달러이상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서머스간에는 암묵적인 양해가 있었다.

미국의 브라질지원, 일본의 아시아지원을 서로 용인한다는 것이었다.

3백억달러규모의 신미야자와구상과 총4백40억달러에 달하는 IMF의
브라질지원은 그렇게 진행됐다.

그해 11월 앨리스 리블린 연준리(FRB) 부의장은 세계경제가 최악기를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 박재림 기자 tr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