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법이 계속 표류하고 있다.

언제쯤 햇빛을 보게 될지 기약도 없다.

KBS와 MBC 노조가 민주적이고 개혁적인 방송법 제정을 요구하면서 벌써
열흘째 파업을 계속하고 있고, 케이블TV와 위성방송업계는 사업차원에서
방송법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내각제 파문"에다 "정계
개편설" 등으로 제정신이 아닌 정치권에서는 여건 야건 관심조차 없는
형국이다.

이러다간 8월2일 소집키로 한 다음 임시국회에서는 말할 것 없고 9월
정기국회에서마저 과연 결말이 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사람들은 "방송법소동"에 관해 다소 혼란스러워 한다.

쟁점을 둘러싼 대립과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개정과 제정, 그리고 그냥
방송법과 통합방송법이란 표현이 뒤엉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표현을 쓰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실질 내용은 새로운 법의 제정이고 통합방송법이다.

지난 87년 처음 제정되어 시행중인 현행 방송법을 손질하는 것이지만 실은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또 이 법에는 방송법뿐 아니라 종합유선방송법 유선방송관리법
한국방송공사법 등 방송관련법률이 모두 통합된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방송계는 노조가 지금 주장하고 있는 방송위원회의
독립성 보장과 중립적 운영 등 개혁필요성 말고도 기왕의 공중파방송 외에
케이블TV 중계유선 위성방송 디지털 방송 등을 관할할 새로운 통합법의 제정
필요성에 관해 지난 94년부터 활발히 논의해 왔으며 96년에는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를 비롯 야3당 명의의 공동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에다 정권교체 IMF사태 등으로 표류하다가 금년초 방송개혁
위원회가 위성방송사업 지분문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해답을 제시함에
따라 잘하면 상반기안에 새 방송법 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됐었다.

노조가 지금 반영을 요구하고 있는 5가지 사항의 옳고 그름을 따지려들면
한이 없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풀고자하는 쌍방의 전향적인 의지와 성의있는 노력이다.

이 법이 방송발전뿐 아니라 방송.통신산업의 장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하고
동시에 긴급을 요하는 사안인가를 노조는 물론 정부.여당이 분명히 인식하고
한시바삐 대화를 통해 매듭을 풀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자면 모두가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

가령 방송사 사장과 방송위원 임명문제만 해도 그렇다.

굳이 인사청문회가 아니더라도 일정기간 여론검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다.

파업이 장기화하고 파행방송이 심화되는 사태가 생기면 모를까 일반
국민들은 사실 방송법을 둘러싼 공방이나 쟁점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법논쟁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이 외국위성방송이 먼저 우리 하늘을 점령하고,
내달 25일 발사예정이라는 무궁화3호위성이 또 하릴없이 겉돈대도 시청자들은
별 불편을 안느낄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미래의 문제이며 21세기 방송문화와 산업을 책임져야 할
정부와 방송계 산업계의 문제다.

따라서 이들이 앞장서서 풀어야 할 과제다.

방송법의 조속한 결말을 위해서는 지금 당장 1백% 만족스런, 완벽한 법을
만들수는 없으며 어차피 얼마안가 다시 큰 손질을 하게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재 통신과 방송의 2원적 법체계와 조직을 전제로 특히 방송법상의
방송위 위상과 인사문제 처리에 골몰하고 있다.

세계의 방송.통신 융합흐름과는 동떨어진 길을 가고 있다.

따라서 비록 "후진적"이란 지적을 받더라도 우선은 위성방송 등 막힌 길목을
트고 기타 방송정책 및 규제와 관련해서 긴급을 요하는 개혁을 담은 기본법
체계를 마련한다는 자세로 빨리 결말을 내야 한다.

장차 방송.통신의 융합을 제도적으로나 실질 내용면에서 실현하고자 한다면
역시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상원의 권고와 인준에 따라 임명한 임기 5년의 상임위원 5명이
2천명 가까운 직원으로 운영하고 있는 FCC는 통신과 방송산업 전반의 정책
및 규제권한을 가진 독립기관으로서 타행정기관과 달리 의회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며 고유한 행정권한 이외에 준입법.사법권한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의 통신위원회는 이름만 흉내낸, 3년 임기의 비상근
민간위원 6명에다 2급 상임위원 1명과 사무국 직원 20명의, 초라하기 짝이
없는 정보통신부 부속기관에 지나지 않는다.

사사건건 밥그릇싸움에 바쁜 관료와 정치권의 행태를 생각할 때 과연 우리의
방송.통신도 언젠가 융합될 날이 올지 적이 의심스럽다.

그야말로 갈길이 멀다.

그러나 대세를 거스르기는 힘들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우선 방송법 표류사태만이라도 하루빨리 끝내고 봐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