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 없이 이름만 높아졌구나. 세상은 또한 어지럽고 위험한데 알지
못하누나. 어느 곳에 이 몸을 감출까. 어찌 숨을 곳이 없으리오마는 자못
이름을 숨기면 숨길수록 더욱 새로워질까 그를 두려워하노라"

경허선사가 제자 한암과 해인사로 가던 길에 지은 노래다.

헛된 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빈 손의 수도자로 올바른 길을 가라는 가르침
이다.

소설가 최인호(54)씨는 최근 펴낸 수상록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
(여백)에서 이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는 87년에 세례받은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불교에 깊이 매료돼 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불교적 가톨릭 신자"다.

그는 가톨릭 주보에 정기적으로 기고하면서 불교매체에도 글을 쓴다.

무이라는 법명까지 갖고 있다.

이번 수상록에서도 그의 자유로운 종교관은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구를 더 좋아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
하겠는가"라고 반문한 뒤 "내 정신의 아버지가 가톨릭이라면 내 영혼의
어머니는 불교"라고 대답한다.

그를 불교의 오묘한 세계로 이끈 결정적 계기는 경허 스님의 선시였다고
한다.

그는 "일 없음이 오히려 나의 할 일(무사유성사)"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순간
방망이로 두들겨 맞은 듯했다고 고백한다.

이 한 구절로 큰스님 경허라는 두레박을 발견했고 이 두레박을 타고 불교의
깊은 우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경허스님의 행장을 그린 소설 "길 없는 길"도 그렇게 해서 나왔다.

이 때 그는 스님의 승복을 뺏어 입고 밀짚모자를 쓴 채 네온이 반짝이는
압구정동 밤거리를 걸어다니기도 했다.

"지난 2천년 동안 불교정신은 한민족의 영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느님과
부처의 진리가 결국 하나라는 깨달음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거죠" 그는 과천
청계산을 자주 오른다.

산길을 걸으며 마음의 부처에게 설법을 듣고 인생이라는 성불의 문을 향해
나아간다.

산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내가 생을 받은 것은 부처로 나아가는 또한번의
기회를 받은 것에 불과하니 나는 아직도 스님이 되고 싶다"고 읊조린다.

그는 이번 책에 "스님이 돼서 염궁문을 거쳐 무념처에 이르러 구름이 일어나
고 바람이 부는 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석가여래 손가락에 낙서를 하고
돌아섰던 손오공처럼 푸른 하늘에 옥인 도장 하나를 찍고는 시인 천상병이
노래했듯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고 썼다.

그가 불교를 좋아하는만큼 불교인들을 향한 일침도 따끔하다.

가장 뾰죽한 연필이 가장 가는 선을 그을 수 있고 가장 날카로운 취모검만이
먼지를 끊을 수 있다며 저자거리로 나서기보다 정신의 촉을 뾰죽하게 하는 일
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되고 싶은 것은 꼭 산중의 수도승만이 아니다.

아내와 아들 딸이 있는 가정의 평생수도원에서 죽을 때까지 평수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후반부에 실린 가족 이야기가 그래서 살갑게
다가온다.

아무도 못 말릴 정도로 사람들을 웃긴다는 아내,어느날 떼어본 주민등록등본
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시집간 딸에 대한 애틋함이 정감있다.

일본 여행길에서 야한 영화를 함께 보자고 당돌하게 제의할만큼 커버린
아들을 바라보는 눈길도 따뜻하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