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명 : ''우리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
저자 : 황훈영
출판사 : 푸른숲
가격 : 9,0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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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곰만 사람이 되었을까"

우리 민족정신의 원형인 단군신화에는 의미심장한 함축미가 담겨 있다.

호랑이는 현실적이고 외적인 힘의 상징.

곰은 이상적이고 내적인 힘의 원천이다.

호랑이는 조선시대 무반의 표식이듯 투쟁과 정복의 동물인데 비해 곰은
맹수이면서도 참을성있고 순박하다.

곰을 인간으로 선택한 한민족 정신은 인간의 역사를 정복의 역사로 보는
서양과 대조적이다.

환웅이 곰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1백일동안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던 것은
무슨 의미일까.

원시인들에게 어둠은 공포와 절망이었다.

이는 곧 인간이 되기 위한 고행의 과정을 암시한다.

진짜 사람이 되려면 어려운 일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가르침과 닮았다.

자식을 낳고 삼칠일동안 바깥 사람을 들이지 않는 것, 1백일이 지난 뒤에
잔치를 벌이는 풍습도 마찬가지다.

곰이 인간으로 거듭나는데 스무하루가 걸렸고 1백일을 참으면 인간이 된다는
환웅의 약속과 일치한다.

최근 나온 "우리 역사를 움직인 33가지 철학"(황훈영 저, 푸른숲, 9천원)은
이처럼 역사속에 응축돼 있는 한민족의 의식구조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삼신할매 제천의식 등 우리 고유의 전통철학부터 불교
유교 등 중국에서 들어와 내면화된 외래철학,동학 등 19세기에 자생한 근대
철학까지를 두루 살핀다.

그는 한국철학의 뿌리가 인간.생명존중에 있다고 강조한다.

생명을 다스리는 삼신할매 신앙과 인간 삶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천의식 등이
그것이다.

삼국시대의 원효사상도 큰 줄기다.

원효는 대승과 소승, 선과 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분열과 갈등을 아우르며
조화와 통합의 정신을 강조했다.

이른바 화쟁사상이다.

"산을 보지 못한 채 골짜기를 헤매거나 나무를 버리고 숲으로 달려가는 격"
이 돼서는 안된다고 일깨운 것이다.

화쟁사상은 포용의 정신과도 통한다.

신화 속에서 버림받은 호랑이마저도 우리 민족에게는 포용의 대상이었다.

민화속에 나오는 호랑이 그림이 익살스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와 유교도 "한국적 불교"와 "한국적 유교"로
거듭 태어났다면서 청년정신의 기초가 된 화랑도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조선시대의 토정비결과 최제우의 동학사상 역시 한국 특유의 사상체계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과학 마인드는 어땠는가.

저자는 머뭇거리지 않고 세종대왕을 꼽는다.

세종은 "잘 사는 나라의 밑거름은 과학"이라고 강조한 지도자.

"세종의 카메라"로 불리는 동표(태양의 고도를 측정하는 기구)와 국가 표준
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개발한 엘리트 과학자였다.

조선후기의 실학사상은 지금 봐도 매우 진취적인 것이었다.

그 때 이미 "낡은 것을 모두 바꿔라"고 혁신을 외쳤다.

실학자들의 "실사구시" 이념은 무조건적인 모방주의와 달랐다.

그들은 자주적인 바탕위에서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해외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국 철학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저자는 "2천년간 계속된 사대주의와 신분제의 악습은 민족 자주와 인권 측면
에서 봤을 때 어두운 그림자였던 게 분명하다"고 말한다.

동학이나 후천개벽,미륵신앙이 생겨난 것도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려는
의지였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같은 역사의 명암을 균형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21세기 한국철학
정립의 첫걸음이라고 얘기한다.

세계화 시대일수록 주체적인 정신의 뿌리는 깊고 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래의 한국정신도 우리를 여태까지 지탱시켜주었던 의식의 밑거름
위에서 싹틀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