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4년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사건에 기념비적인
판결을 내렸다.

뉴욕타임스 사건에서 공직자에 대한 비판과 관련, 종래의 "엄격책임론"을
포기하고 "현실적 악의"라는 새로운 책임론을 제시했다.

"현실적 악의"는 공인이나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 언론보도의
책임을 완화해 주는 것이다.

즉 문제가 된 표현이 거짓임을 알거나 약간의 주의만 기울였다면 잘못된
것임을 알수 있는데도 이를 무시했을 경우에만 언론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주의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이같은 주의는 상당부분 퇴색하고
있다.

법적용이 보다 엄격해지는 추세다.

이에따라 언론소송이 급증하고 손해배상 청구액도 천문학적 수치로 치솟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신시내티 인콰이어지는 대형 유통회사인 치키타 브랜즈
인터내셔널사에 대한 기사를 발표한지 불과 며칠만에 1면에 사과문을 발표
했다.

또 1천만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오보를 이유로 텍사스주의 한 증권사는 월스트리트저널을 상대로
2억2천3백만달러의 배심원 평결을 얻어냈다.

뉴욕의 모 주간지는 2백여만달러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고 문을 닫았다.

물론 미국에서 배심원 평결액이 손해배상액으로 선고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이 합리적인 수준으로 감액하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명예훼손 사건의 평균배상액은 90년초에 비해 무려 4배이상 급증
했다.

말레이시아에선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의 아들이 부모의 후광으로 사업에
성공했다고 보도한 신문을 상대로 최근 3천9백5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국내도 예외는 아니다.

왠만한 명예훼손 내지 초상권침해에 대해서도 3천만원을 넘는 위자료가
일반화되고 있다.

최근들어서는 손해배상금이 억대를 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문민정부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한겨레신문의 보도내용을
문제삼아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올들어서는 검사들이 방송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대전 법조비리사건 보도자세를 문제삼아 22명의 검사가 방송사와 취재기자를
상대로 모두 1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법원도 인격권의 보호에 적극적이다.

고위 공직자의 경우 그 직무수행이 적법하거나 직무영역과 무관한 사적영역
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신원공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관련 당사자가 일반인이면 범죄보도라도 더 엄격하다.

헌법상 무죄추정 원칙 때문이다.

특히 가사소송법과 소년법및 일부 특별법에선 신원보도금지 조항을 통한
익명보도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대형사고의 희생자처럼 우연적으로 대중의 주시를 받게 되는 경우에도
"공공의 질서 또는 공적이해 관심사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욕구수용" 차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사건 사고 피해자를 익명으로 보도하는 것은 스웨덴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