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P&G는 최근 "위스퍼 그린"이란 이름의 생리대 신제품을 내놓고 판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TV에 제품 광고를 내고 있고 대규모 매장에서는 샘플을 대대적으로
나눠준다.

늘 벌이는 판촉행사지만 이번만큼은 유난히 요란스럽다.

지난 4월 라이벌인 유한킴벌리에게 빼앗긴 생리대시장 선두 자리를 탈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P&G는 세계최대의 생활용품업체인 미국 P&G가 1백% 투자한 외국계 기업.

지난해 쌍용제지를 인수하고 선발업체인 유한킴벌리 추격에 나섰다가
생리대부문에서 일격을 당한 뒤 부랴부랴 전열을 가다듬었다.

유한킴벌리 역시 미국 킴벌리의 지분이 60%에 달하는 외국계 기업이다.

한국 생리대시장에서 미국계 업체끼리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생리대뿐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1년반이 지나면서 다국적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는 분야가 부쩍 늘었다.

건전지 소프트웨어 맥주 신문용지 살충제 농약 등은 "외국업체들의 손에
넘어갔다"는 말을 듣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외국업체들이 상위권으로 도약했다는 점에서는 화장품
할인점 사무기기 등 다른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건전지분야에서는 외국기업이 국산 유명 브랜드들을 손아귀에 넣었다.

썬파워와 로케트는 오랫동안 한국 건전지를 대표해온 브랜드.

그러나 이 둘은 외환위기 전후에 미국 질레트에 넘어갔다.

질레트는 듀라셀이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고 있으면서도 현지 브랜드를
7년간 빌려쓰는 전략을 썼다.

이를 통해 단숨에 한국 건전지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했다.

맥주의 경우 "순수 토종"은 없다.

맥주시장은 하이트 OB 진로쿠어스가 50대35대15의 비율로 나눠갖고 있다.

이 가운데 OB는 지난해 벨기에 인터브루와 50대50 비율로 합작하면서
합작회사로 거듭났다.

최근 국제입찰 파문에 시달리고 있는 진로쿠어스는 OB맥주나 미국 쿠어스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하이트맥주 역시 순수한 토종기업은 아니다.

덴마크 칼스버그가 이 회사 지분의 16%를 갖고 있다.

첨단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컴퓨터 하드웨어는 아직도 국내업체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외국업체들의 입김이 거세다.

전자상거래 솔루션이나 전사적자원관리시스템(ERP)의 경우 한국오라클
SAP코리아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 한국컴팩컴퓨터 등 외국계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최근 몇년새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ERP 가운데 대기업용은 사실상
외국기업들의 독무대다.

유통분야에서는 까르푸 월마트 등 외국계가 E마트 킴스클럽 등 토종 할인점
들과 정면대결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계 까르푸는 지난해부터 공격경영에 나서 선두 E마트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그동안 상표권 분쟁에 휘말렸던 미국 월마트도 최근 고유상표를 되찾고
전열을 재정비했다.

삼성테스코 프로모데스 등 다른 외국계 할인점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이밖에 미국계 한국존슨은 지난해 삼성제약으로부터 에프킬라를 매입,
살충제시장의 55%를 차지하는 선두업체가 됐다.

지난해 한일합작기업에서 외국기업 단독투자기업으로 바뀐 한국후지제록스는
요즘 디지털 복합사무기기 분야에서 선두를 달린다.

씨앗시장에서는 미국 세미니스가 지난해 흥농종묘 중앙종묘를 인수,
한국시장의 절반을 차지했고 신문용지 역시 외국기업들이 70% 이상 장악했다.

< 김광현 기자 kh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