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업계 창업주들 가운덴 "별난 경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익과 비용"이란 잣대로는 이해하기 힘든 행태가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옥을 옮기고도 창업때 쓰던 좁은 사무실을 집무실로 고집하는
"수구초심형",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신세대와 부단히 접촉하는 "젊은피
수혈형", 주역이나 십장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고전형" 등 다양하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믿음형"은 이미 널리 알려진 유형.

"야" "보이런던"으로 유명한 보성인터내셔널과 보성어패럴은 올해초 사옥을
서울 강남구 역삼동과 논현동으로 옮겼다.

패션 1번지인 강남에 진출해야 사업도 승산이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김호준 회장은 여전히 옛사옥인 동부 이촌동 한강쇼핑센터 3층에서
집무중이다.

의류업체 성공의 키워드는 유행 따라잡기.

그러러면 현장 직원부터 최고경영자까지의 의사결정이 빨라야 한다.

그런데도 김회장이 옛 사옥을 고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업의 발상지이자 브랜드를 키워낸 곳이라는 애착 때문이다.

지난 92년 단돈 3천만원에 한강쇼핑센터 3층의 8평짜리 임대사무실을 빌려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제 연간 3천억원(98년 기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체
총수이다.

의류 악세사리를 만드는 "쌈지"의 천호균 사장은 "젊은피 수혈형".

연극과 록음악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다.

콘서트홀을 사옥내에 설치할 정도다.

동숭로의 무명가수들도 수차례 지원했다.

여기에는 패션사업에 대한 그의 지론이 깔려있다.

주요 고객인 젊은층과 어울려 니즈를 파악해야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젊음"은 사업 성공을 보장하는 증명서인 셈이다.

"발렌티노" 넥타이로 알려진 예진상사의 엄재성 사장.

엘칸토에 여성의류 "까슈"를 납품중인 대명 엔터프라이즈의 남국 사장.

이들은 고전형으로 분류된다.

엄사장은 주역에 일가견을 이뤘다는 평이다.

거래처 사람 사주도 봐주고 사업을 벌이는 경우엔 자문도 해준다.

물론 자신의 사업에도 주역을 참고서로 활용한다.

그 덕택인지 그는 2백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중이다.

남사장은 십장생의 하나인 거북이 애호가.

장수와 부를 상징한다며 살아있던, 인형이나 크리스탈로 만들었던, 보이는
대로 사들인다고 한다.

신원의 박성철 회장과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은 믿음형이다.

신원은 매주 월요일 오전 전직원이 예배를 드린다.

마포로 사옥뿐 아니라 전국 지점과 매장의 공통사항이다.

이랜드의 박성수 회장도 사업과 기독교를 병행하는 대표적인 기업가.

이들의 "마이웨이 경영"은 업종 특성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의류제품 판매가격은 생산원가의 3배 이상에서 결정되는 게 보통.

불티나게 팔리는 속칭 "대박"을 터뜨리면 사세는 순식간에 팽창한다.

신흥 중견그룹중 상당수가 의류업을 모태로 하는 점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하지만 재고상품은 천값도 제대로 못 건진다.

"도 아니면 모"인 셈이다.

최고 경영자로선 소신을 요구받게 마련.따라서 정신적 의지가 되는 무언가를
찾는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의류업계엔 독특한 스타일을 보이는 창업주들이 많다"며
"IMF사태로 경영여건이 더욱 어려워지자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 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