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기업] '경동보일러' .. 중국대륙 보일러 열풍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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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동보일러(대표 김철병)가 중국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 현지 내수시장을
장악하는 최강업체로 부상했다.
이 회사는 옌벤과 베이징에 현지법인, 상하이에 지사를 뒀고 동북 3성에서
신강성 등 서부와 남부지역까지 1백20여개 경동 대리점망을 구축했다.
기름보일러에 이어 올들어 가스보일러에서도 중국내 최대점유율을 보이면서
기업 및 제품 인지도를 드높이고 있다.
프랑스 두발사 등 선진 기업들과의 품질.
애프터서비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최근 3년여간 연평균 70%의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올해 중국내 판매액이
1천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현지 진출한 지 6년여 만의 일이다.
업무.인사관리를 철저히 하고 현지사회와 융화.협력한 것이 이같은 보기
드문 성공사례를 낳았다.
그 주역은 조승규(54) 전무.
한양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조 전무는 중국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지난 88년부터 이곳을 드나들며 시장조사를 했다.
추운 날이 많은 동북3성이 진출 적격지란 판단이 서자 93년 길림성 연길시에
첫 사업거점을 마련했다.
이어 95년 베이징에도 단독법인을 설립함으로써 대량 공급체제를 갖췄다.
1만5천5백평 규모의 자체 조립공장을 갖추는 데 약 8백만달러를 투자했다.
본격적인 내수 공략이 시작됐으나 현지인들의 의식은 따라가지 못했다.
공장내 공구를 훔쳐가는 종업원이 있었고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
예사였다.
과단성 있는 조 전무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공구를 원위치시키지 않으면 보너스를 깎는다고 공표했지요. 그러자 그
다음날 제자리에 갖다놓더군요. 담배꽁초도 개수에 따라 급여를 1달러씩
뺀다고 했더니 금방 없어지더군요"
2개월만에 근로자들의 질서의식과 업무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조전무
는 말했다.
법인 대표로서 현장에서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교육하고 개선한 결과이다.
현재 베이징공장의 80여 종업원 가운데는 베이징대 하얼빈공대 등 명문대
출신이 적지 않다.
직원 이동이 거의 없는 안정적인 일터로 자리잡았다.
공장내에는 전시룸과 AS교육장을 마련, 품질 및 사후관리에 힘쓰고 있다.
"중국내 선진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은 한국내 경동보일러 품질수준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베이징법인의 박용희(43) 총경리는
전했다.
여기에 매출의 5%를 광고비로 쓰며 기업 인지도를 쌓았다.
일찍 진출한 연길의 경우 "연길역" 표지판 위에 경동보일러 광고판을 설치해
연길역이 "경동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현지사회에 적지 않게 기여해 "좋은 기업"이란 이미지를 심어놓았다.
옌벤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창작동요제를 경동이 4년째 후원하고 있고 조 전무
개인적으로도 옌벤대학에 상당한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동은 최근 북경무장경찰대본부와 청더시가 실시한 공개입찰에서 각각
4백 50가구 및 1천2백50가구분의 가스보일러를 수주했다.
중국시장을 겨냥해 냉장고 소음보다 조용한 전략상품을 곧 출시하면
파죽지세의 기세로 현지를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형 온돌식 주거문화를 인구대국 중국에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경동맨들
의 비전이다.
< 베이징=문병환 기자 m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6일자 ).
장악하는 최강업체로 부상했다.
이 회사는 옌벤과 베이징에 현지법인, 상하이에 지사를 뒀고 동북 3성에서
신강성 등 서부와 남부지역까지 1백20여개 경동 대리점망을 구축했다.
기름보일러에 이어 올들어 가스보일러에서도 중국내 최대점유율을 보이면서
기업 및 제품 인지도를 드높이고 있다.
프랑스 두발사 등 선진 기업들과의 품질.
애프터서비스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
최근 3년여간 연평균 70%의 고성장을 지속하면서 올해 중국내 판매액이
1천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현지 진출한 지 6년여 만의 일이다.
업무.인사관리를 철저히 하고 현지사회와 융화.협력한 것이 이같은 보기
드문 성공사례를 낳았다.
그 주역은 조승규(54) 전무.
한양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조 전무는 중국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내다보고
지난 88년부터 이곳을 드나들며 시장조사를 했다.
추운 날이 많은 동북3성이 진출 적격지란 판단이 서자 93년 길림성 연길시에
첫 사업거점을 마련했다.
이어 95년 베이징에도 단독법인을 설립함으로써 대량 공급체제를 갖췄다.
1만5천5백평 규모의 자체 조립공장을 갖추는 데 약 8백만달러를 투자했다.
본격적인 내수 공략이 시작됐으나 현지인들의 의식은 따라가지 못했다.
공장내 공구를 훔쳐가는 종업원이 있었고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
예사였다.
과단성 있는 조 전무는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공구를 원위치시키지 않으면 보너스를 깎는다고 공표했지요. 그러자 그
다음날 제자리에 갖다놓더군요. 담배꽁초도 개수에 따라 급여를 1달러씩
뺀다고 했더니 금방 없어지더군요"
2개월만에 근로자들의 질서의식과 업무태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조전무
는 말했다.
법인 대표로서 현장에서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교육하고 개선한 결과이다.
현재 베이징공장의 80여 종업원 가운데는 베이징대 하얼빈공대 등 명문대
출신이 적지 않다.
직원 이동이 거의 없는 안정적인 일터로 자리잡았다.
공장내에는 전시룸과 AS교육장을 마련, 품질 및 사후관리에 힘쓰고 있다.
"중국내 선진 기업들과의 치열한 경쟁은 한국내 경동보일러 품질수준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베이징법인의 박용희(43) 총경리는
전했다.
여기에 매출의 5%를 광고비로 쓰며 기업 인지도를 쌓았다.
일찍 진출한 연길의 경우 "연길역" 표지판 위에 경동보일러 광고판을 설치해
연길역이 "경동역"으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현지사회에 적지 않게 기여해 "좋은 기업"이란 이미지를 심어놓았다.
옌벤방송국에서 주최하는 창작동요제를 경동이 4년째 후원하고 있고 조 전무
개인적으로도 옌벤대학에 상당한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경동은 최근 북경무장경찰대본부와 청더시가 실시한 공개입찰에서 각각
4백 50가구 및 1천2백50가구분의 가스보일러를 수주했다.
중국시장을 겨냥해 냉장고 소음보다 조용한 전략상품을 곧 출시하면
파죽지세의 기세로 현지를 파고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형 온돌식 주거문화를 인구대국 중국에 확산시키겠다는 것이 경동맨들
의 비전이다.
< 베이징=문병환 기자 m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6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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