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기원(52)씨는 요즘 계룡산 갑사의 한 토굴에서 지낸다.

좋아하던 술도 끊었고 사람 만날 일도 없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암자까지 하루 세번 밥 먹으러 가는 게 유일한 외출
이다.

산책길에서 다람쥐를 만나 잠시 놀기도 한다.

문을 닫고 토굴 속으로 들어앉으면 사방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흰 고무신만 여름 햇살에 반짝거릴 뿐이다.

그는 이곳에서 지난 봄부터 명상과 글쓰기에 정진했다.

"갈애" "의념" 같은 단어가 그의 화두였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며 장편소설 "안으로의 여행"(문이당)을 썼다.

"마음을 들여다보면 진짜 내가 보이잖아요. 얼마나 더 깊이 스스로에게
다가가느냐 하는 게 문제죠. 그동안 너무 바깥에서 나를 찾아 헤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지난 97년 인도에서의 체험과 내면수행을 담은 구도소설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의 기록.40대 남자 박연호가 주인공이다.

그는 잡지사 일로 여류 화가를 만나 짧고 격렬한 사랑을 나누다가
"빈 껍데기의 자신"을 발견한다.

세상을 향해 한번도 큰 소리를 지른 적이 없고 고통과 정면대응도 해보지
못한 자신의 삶에 갈증을 느낀 것이다.

그는 화가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자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아내에게
이혼서류를 넘겨준 뒤 인도의 히말라야로 떠난다.

자신을 방생하기 위한 고행의 길로 나선 것이다.

갠지스강 발원지인 히말라야의 강고트리로 가는 길에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수행중인 대학동창 한태인을 만난다.

작품속의 한태인은 "또 다른 나"인 동시에 깨달음의 길을 암시해주는
안내자다.

태인은 그에게 "도덕이나 윤리 고정관념 죄의식 등 지금까지 네 마음을 속박
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방생"이라고 충고한다.

히말라야에 도착한 박연호는 "고통의 연꽃"위에 자신을 앉힌다.

처음에는 죽은 여자의 환영에 시달린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살기에 휩싸여 고통받기도 한다.

그러다 "꽃들의 골짜기"에서 사흘간 열병을 앓고 난 뒤 그녀의 환상에서
벗어난다.

해발 2천m의 코사니에서 "정신의 블랙홀"을 겪고 나서 그는 어두운 마음의
밑바닥에서 버둥거리며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본다.

그것은 태어난지 한 해도 되지 않아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아 빈 껍질의
삶을 살게 된 자신의 모습이다.

갈증에서 시작된 살기와 혼돈, 어둠의 이미지를 하나씩 벗기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행보다.

방생의 끝에서 새롭게 잉태된 생명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맞닿아 있다.

삶과 죽음, 안과 밖의 차이가 따로 없다.

그의 수행방법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힌두교의 근본 원리를 아우른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우주의 근원까지 들어가는 깨달음이
그곳에서 비롯된다.

마지막 문장 "부디 네 마음에 있는 깊은 세계의 바닥을 보거라"에 주제가
함축돼 있다.

송씨는 "올해말까지 토굴에 머물면서 마음을 더 닦고 소설도 한편 더
쓰겠다"고 말했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