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변압기 구매계획을 늦춰주세요"

최근 국무총리실엔 이색적인 건의문이 접수됐다.

한국전력에 변압기를 납품하는 전기부품업체들의 모임인 전기공업진흥회가
보냈다.

이 단체는 올초 한전설비공사의 예산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번엔 거꾸로 "예산집행을 연기해달라"고 사정했다.

한전이 올들어 경기부양용 전력설비 예산을 1조원이나 추가 집행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한전은 추가 예산을 발전.송전보다는 배전부문에 집중투자(5천8백억원)
했다.

배전공사의 필수자재인 변압기 발주물량은 작년보다 50%나 늘어났다.

그러나 변압기 제작사들은 즐거운 비명 대신 한숨만 내쉬고 있다.

원자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

전국의 배전공사 현장에선 "변압기 부족 파동"이 일어났다.

국내에서 변압기를 만드는 곳은 현대 효성 등 대기업을 비롯, 국제전기
동미전기 신한전기 등 30여개 업체.

이들 회사는 "상반기에 변압기 발주물량의 70%가 몰리면서 심각한 원자재
조달난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변압기 제작업체들은 변압기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규소강판의 적정량을
조달받지 못하고 있다.

규소강판을 제작하는 포항제철 등 철강업체들도 생산라인 사정상 일시에
많은 물량을 생산할 수 없어서다.

변압기 제작사들이 변압기 원자재를 일본 등에서 수입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본산은 국산보다 20%이상 비싸다.

게다가 한전의 발주물량을 발주후 40일안에 납품하지 않으면 이들 회사는
지체벌칙금을 물어야 한다.

벌칙금은 계약액의 1천분의 15(1억원이면 15만원).

이런 사정 때문에 변압기 제작회사들은 한전측에 발주물량을 하반기로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한전은 "예산집행 계획상 어쩔 수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결국 변압기 제작사들은 총리실에까지 하소연했다.

전기공업진흥회 관계자는 "한전이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변압기를 무리하게
발주하는 바람에 때아닌 변압기 부족 파동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경기부양과 고용창출을 위해 긴급편성된 전력설비 추가증설 예산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부작용을 낳고 있다.

< 정구학 기자 cg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