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CEO 탐구] 박찬문 <전북은행장> .. '프로뱅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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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년 전북 정읍 출생
<> 전주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
<> 57년 한국은행 입행
68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코노미스트
79년 한은 조사2부장, 조사1부장, 외환관리부장
83년 한은 이사
89년 한은 감사
92년 금융결제원장
95년 전북은행장
98년 지방은행협의회 의장
<> 부인 최성아 여사와 1남1녀
-----------------------------------------------------------------------
박찬문 전북은행장은 금융계의 신사로 불린다.
부드러운 외모와 깔끔한 매너가 돋보인다.
업무에 있어서 만큼은 말 그대로 "깐깐하다".
지난해 몰아친 구조조정의 태풍을 이겨내고 전북은행을 지방은행의
선두주자로 끌어올린 것도 이같은 능력 덕택이라고 은행사람들은 평가한다.
박 행장은 57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이후 40년 넘게 금융계에 몸담아온
대표적인 뱅커.
지난 95년부터 전북은행장을 맡아 중임하고 있다.
그가 행장을 맡으면서 우선적으로 추진한 일이 "프로정신"을 불어 넣는
작업.
지방은행들이 시중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신통치 않은 기업에까지 대출해
주는 유혈경쟁 관행을 버렸다.
그는 "시중은행들이 쳐다 보지도 않는 기업들에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일이 지방은행들 사이에 흔했다. 이것부터 뜯어고쳤다"고 말했다.
이때 이뤄진 부실기업에 대한 여신축소가 전북은행이 구조조정 과정을
순조롭게 넘기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가 행장에 처음 부임했을 때의 이야기.
부실징후가 보이는 기업에 대출을 회수할 것을 지시하자 지역유지들이 매일
행장실을 찾아왔다.
"지방기업을 다 죽이려는 것이냐"는 항의성 방문이었다.
곳곳에서 압력이 들어 왔지만 그는 원리원칙대로 버텼다.
그래서 소문이 나쁘게 난 적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은행들이 탐닉했던 주식투자도 과감히 외면, 보유주식도 모두 팔아
치웠다.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이 몰아친 작년 전북은행은 1천6백4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올해 2백66억원의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박 행장이 98년에 중임하게 된 것도 이런 점이 작용해서다.
그는 3년만 하고 쉴 생각이었다.
일도 힘든데다 은행을 살리기 위한 원칙적인 경영으로 지역유지와 갈등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주주들이 그가 일궈낸 실적을 높이 사 잡았다.
각 부서장들과 노조에서도 연임을 해달라고 서명운동까지 했을 정도다.
이강남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박 행장에 대해 "경영관리능력이나 업무능력이
탁월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마음고생이 많다.
지역적인 한계와 고급인력부족으로 노력해도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방은행의 기반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점도 그에겐
큰 부담이다.
그래도 올해 5백억원의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그가 꼽는 가장
큰 보람.
유상증자 실시전에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의 애널리스트들 1백30여명을 불러
놓고 직접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그는 "은행의 경영실적을 남김없이 공개했다. 속옷까지 다 벗은 기분이었다.
결국 그들도 우리 회사를 좋다고 평가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유상증자에 큰 관심을 보인 해외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반기에
제3자 배정방식으로 5백억원 정도를 추가로 유상증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박 행장은 "맛없는 포도로도 세계 최고의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고 단언
한다.
지역특성에 맞게 소매금융을 특화시키면 지방은행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골프를 즐기고 미술감상에도 조예가 깊다.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와 김명호 이경식 전 한은 총재, 이상근
신용금고연합회장과 하는 입행동기다.
독실한 천주교신자로 외국 신학서적을 번역해 출판한 적도 있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6일자 ).
<> 35년 전북 정읍 출생
<> 전주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
<> 57년 한국은행 입행
68년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코노미스트
79년 한은 조사2부장, 조사1부장, 외환관리부장
83년 한은 이사
89년 한은 감사
92년 금융결제원장
95년 전북은행장
98년 지방은행협의회 의장
<> 부인 최성아 여사와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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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문 전북은행장은 금융계의 신사로 불린다.
부드러운 외모와 깔끔한 매너가 돋보인다.
업무에 있어서 만큼은 말 그대로 "깐깐하다".
지난해 몰아친 구조조정의 태풍을 이겨내고 전북은행을 지방은행의
선두주자로 끌어올린 것도 이같은 능력 덕택이라고 은행사람들은 평가한다.
박 행장은 57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이후 40년 넘게 금융계에 몸담아온
대표적인 뱅커.
지난 95년부터 전북은행장을 맡아 중임하고 있다.
그가 행장을 맡으면서 우선적으로 추진한 일이 "프로정신"을 불어 넣는
작업.
지방은행들이 시중은행과 경쟁하기 위해 신통치 않은 기업에까지 대출해
주는 유혈경쟁 관행을 버렸다.
그는 "시중은행들이 쳐다 보지도 않는 기업들에 무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일이 지방은행들 사이에 흔했다. 이것부터 뜯어고쳤다"고 말했다.
이때 이뤄진 부실기업에 대한 여신축소가 전북은행이 구조조정 과정을
순조롭게 넘기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그가 행장에 처음 부임했을 때의 이야기.
부실징후가 보이는 기업에 대출을 회수할 것을 지시하자 지역유지들이 매일
행장실을 찾아왔다.
"지방기업을 다 죽이려는 것이냐"는 항의성 방문이었다.
곳곳에서 압력이 들어 왔지만 그는 원리원칙대로 버텼다.
그래서 소문이 나쁘게 난 적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당시 은행들이 탐닉했던 주식투자도 과감히 외면, 보유주식도 모두 팔아
치웠다.
구조조정의 거센 바람이 몰아친 작년 전북은행은 1천6백40억원의 적자를
냈지만 올해 2백66억원의 흑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박 행장이 98년에 중임하게 된 것도 이런 점이 작용해서다.
그는 3년만 하고 쉴 생각이었다.
일도 힘든데다 은행을 살리기 위한 원칙적인 경영으로 지역유지와 갈등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주주들이 그가 일궈낸 실적을 높이 사 잡았다.
각 부서장들과 노조에서도 연임을 해달라고 서명운동까지 했을 정도다.
이강남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박 행장에 대해 "경영관리능력이나 업무능력이
탁월한 분"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마음고생이 많다.
지역적인 한계와 고급인력부족으로 노력해도 성과가 금방 나오지 않는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방은행의 기반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는 점도 그에겐
큰 부담이다.
그래도 올해 5백억원의 유상증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 그가 꼽는 가장
큰 보람.
유상증자 실시전에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의 애널리스트들 1백30여명을 불러
놓고 직접 투자설명회를 가졌다.
그는 "은행의 경영실적을 남김없이 공개했다. 속옷까지 다 벗은 기분이었다.
결국 그들도 우리 회사를 좋다고 평가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유상증자에 큰 관심을 보인 해외교포들을 대상으로 하반기에
제3자 배정방식으로 5백억원 정도를 추가로 유상증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박 행장은 "맛없는 포도로도 세계 최고의 포도주를 만들 수 있다"고 단언
한다.
지역특성에 맞게 소매금융을 특화시키면 지방은행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골프를 즐기고 미술감상에도 조예가 깊다.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와 김명호 이경식 전 한은 총재, 이상근
신용금고연합회장과 하는 입행동기다.
독실한 천주교신자로 외국 신학서적을 번역해 출판한 적도 있다.
< 김준현 기자 kimj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