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 고려대 명예교수 / 한국사 >

6.25 전쟁 49주기가 돌아왔다.

이 처절했던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무엇이었는가.

남북을 막론하고 엄청난 희생이 바쳐진 전쟁이었는데도 그것은 다만
부끄러운 민족상잔이었을 뿐이며 분단고착화의 계기가 되었을 뿐이었는가.

우리가 그것에서 얻거나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는가 등등 여러가지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6.25 전쟁을 말할 때는 주로 남침이냐 북침이냐가 논의의
초점이 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자료로서는 남침설이 거의 정설이다.

그러나 6.25 전쟁을 침략전쟁으로만 보는 것은 남북 화해보다 대결의 역사
의식에 한정되는 결과를 가져 올 뿐이라 할 수 있다.

침략에 대한 적개심만 높이기 때문이다.

관점을 조금만 바꾸면 6.25 전쟁은 남북을 막론하고 통일을 목적으로 한
전쟁이라 볼 수 있다.

그것이 통일 목적의 전쟁이 아니었다면,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났다 해도
그 침략군을 38선 북쪽으로 격퇴하면 됐지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격하려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가령 북침이었다 해도 북침군을 38선 이남으로 물리치면 되었지 부산까지
쳐내려 오려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6.25 전쟁 때 처음에는 북쪽에서 통일할 뻔했고 다음에는 남쪽에서
통일할 뻔했다.

북쪽에서 통일하지 못한 것은 미군 중심의 유엔군이 참전했기 때문이었고,
다음 남쪽에서 통일하지 못한 것은 중공군 참전 때문이었다.

한반도가 전쟁으로 통일될 뻔했을 때 왜 미군 중심 유엔군과 중공군이
차례로 참전하여 통일이 안 되게 되었는가.

그것은 한반도가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다리처럼 놓인 한반도가 대륙세력권으로
들어가는 경우 해양쪽 일본이 불안해지고, 해양세력권에 들어가는 경우
대륙쪽 만주지방이 불안해진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엽 제정 러시아 세력이 한반도에 뻗쳤을 때 일본이 그 위험을
막는다는 구실로 미국과 영국의 도움을 받아 러일전쟁을 도발했고,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이 그것을 발판으로 만주지방을 침략했다.

6.25 전쟁은 한반도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전쟁으로 통일될 수 없음을
증명해 준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트남이 전쟁으로 통일된 경우와 다르며 독일이 흡수통일된 경우와도
다르다고 할 것이다.

한반도가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전쟁통일도, 흡수통일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정확히 인식될 때 비로소 그 곳에 평화통일안이 정착될 수 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된 지금에는 평화통일안이 어느 정도
정착되어가고 있다.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역사에서 지정학적 위치 문제를 강조하면 숙명론적 역사인식에 빠지기 쉽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 놓여있기 때문에 언제나 양쪽으로부터 침략을
받거나 분단되게 마련이라는 식의 역사인식 말이다.

그것은 침략주의 및 제국주의 시대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는 평화의식의 확대에 따라 느리게나마 평화주의가 정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대전이 두번이나 있었던 20세기 전반기보다 그 후반기가 상대적으로
더 평화로웠고, 21세기는 20세기보다 더 평화로운 세기가 된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가서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통일되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제3의
위치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 사이의 대립을 완화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며, 동북아시아 공동체라도 가능할 경우 그 중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주의 시대의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그만큼 유리한 위치로 된다는
말이다.

6.25 전쟁은 내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있는 한반도가 어느 한쪽 세력권에
들어가게 하려는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3년동안 2백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전국토가 초토화됐으며 남북관계는
물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대립을 격화시켰을 뿐 분단은 그대로
지속되었다.

그후 한반도에 평화통일론을 어느 정도 정착시키는데 반세기라는 시간이
걸렸다.

요컨대 6.25 전쟁은 동북아시아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다리처럼
걸려있는 한반도지역이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통일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전쟁이었다고 하겠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한반도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또 반드시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통일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이 전쟁에 바쳐진 그 많은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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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