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더위 앞에서는 멋쟁이 신사도 우아한 귀부인도 없다.

연신 흘러 내리는 땀에 온 몸이 축축해지고 갑갑하기까지 해 스타일을
제대로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소대로 격식있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면 남보기에 더워 보이고 시원하게
입으려니 품위가 살지 않는 여름 옷차림.

시원하면서도 단아하고 청초한 멋을 풍기는 비결이 모시 옷에 있다.

모시는 삼베로 불리는 대마보다 조직이 가는 저마에서 추출한 섬유다.

촉감이 차가우면서도 땀을 잘 흡수하는 특징 때문에 오랫동안 여름 옷감으로
사랑받아 왔다.

한자로 저, 저포, 저마포 등으로 불리고 삼국사기에 "신라에서 삼십승저삼단
을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남을 만큼 우리 민족과 오랜 세월을 같이
했다.

옛 문헌에 따르면 모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그 우수성이 해외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고려 인종 원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의 글에는 "모시가 백옥처럼
희고 맑아 결백을 상징하고 윗사람이 입어도 의젓함이 나타나며 백저포로는
상복을 삼았다"고 남아 있다.

특히 모시의 대명사로 불리는 한산세모시는 열전도성이 뛰어나고 잠자리
날개처럼 섬세하고 가벼워 옷 뿐만 아니라 침구소재로도 각광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 여름 생활한복 브랜드를 중심으로 각 패션업체에서 이 소재의
옷을 예년보다 많이 내놓고 있어 어느때보다 모시붐이 크게 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생활한복 브랜드 "여럿이함께"의 김성동 사장은 "모시가 여름 최고의 소재
임에는 분명하지만 지금까지 전통상품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 것이 사실"
이라고 말했다.

모시옷의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김 사장의 의견이다.

그러나 올 여름에는 개량화된 한복과 속옷전문 브랜드에서 앞다퉈 모시옷을
내놓고 있어 모시 패션을 즐기는 이가 한층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올 여름 모시옷의 특징은 전통에서 출발한 의상답게 큰 장식과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우리 옷 특유의 곡선의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모시라는 단아한 소재와
매치시키는 것에 주력했다고 디자이너들은 말한다.

색상은 이전보다 다양해졌다.

주 색상은 역시 흰색이지만 옅은 분홍색과 옥색 귤색 황토색 등 여러가지
컬러가 나와 있다.

이들 색상은 마치 물을 흠뻑 먹은 붓이 화선지에 닿는 느낌처럼 투명함을
지니고 있다.

모시 옷에 가장 어울리는 장식은 자수다.

남성복에 해 달 구름이나 학과 소나무같은 강직한 느낌의 자연물이 수놓아져
있다면 여자 옷에는 붓꽃 도라지꽃 등의 들꽃이 놓여 있다.

또 백옥같은 흰색 모시에는 소매끝과 앞섶에 수가 놓여진 스타일이 가장
많다.

아이들용 모시옷은 앞선에 색동 분위기를 낸 디자인이 주류를 이룬다.

다만 빨강색 파랑색처럼 원색적인 색동이 아닌 비슷한 색상의 배열을 통해
색동 이미지를 표현,모시의 청초한 멋을 보존했다.

깃과 소매가 청색이라면 앞선에는 하늘색과 청색, 옅은 보라색 조각보를
이어 붙이는 식이다.

여럿이함께 돌실나이 달맞이 등 생활한복 브랜드에서 판매하고 있는
모시옷의 가격은 평균 25만원에서 30만원대.

최고가 40만원을 넘지 않는다.

생활한복에 앞서 속옷대용인 모시메리를 대중화시킨 언더웨어 브랜드에서도
다양한 상품을 내놓았다.

비비안 트라이 르페 보디가드등의 언더웨어 전문 브랜드들은 이전의 실내복
개념에서 탈피, 집주변까지 입고 외출해도 무난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가격대는 평균 7만원대부터 9만원까지.

부모님께 드릴 선물용으로 적당한 상품의 경우 11만원대까지 한다.

< 설현정 기자 so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