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에 자리잡은 도서출판 푸른숲 사무실.
김혜경(46) 사장이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다.
김 사장을 그토록 신나게 한 것은 신간 "미메시스". "열린책들"이란
출판사가 최근 펴낸 책이다.
"좋은 책이 많이 나오면 한국 출판계 전체의 수준이 한단계 올라가는 건데
남의 회사, 내 회사가 어딨어요"
왜 경쟁사의 책을 그렇게 칭찬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김 사장의 답변이다.
인터뷰 중간에도 김사장에게는 쉴새 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출판계에 대한 코멘트를 받으려는 신문사 기자, 출판계 동료들이었다.
그만큼 김사장은 출판업계의 기둥으로 자리잡았다.
푸른숲은 지난해 매출 21억을 올린 톱 출판사.
"출판 대란"으로 불리는 지난해 불황속에서도 푸른숲은 30%의 매출성장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최대 히트작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지금까지 30여만부가 팔려 나갔다.
나스카 유적의 비밀(인문과학),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시) 등은 지금도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탄탄한 경영덕에 지난해말에는 출판사 사장으로는 최초로 "이달의
중소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망해가던 출판사를 인수해 푸른숲을 창업하던 91년까지
만도 중고생 자녀 2명을 둔 39살의 주부였다.
"재미있으면서도 가치있는 일을 평생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선택한게 출판업이었지요"
당시 그는 퇴직금 5천만원을 들고 출판업에 뛰어들었다.
출판경험은 전무.
대학(이화여대 영어교육) 졸업직후 현대그룹에 입사해 8년간 회장비서실
아산재단 홍보실 등에서 일한 샐러리우먼 경험이 전부였다.
김 사장의 "초보경영"은 출판기획과 마케팅을 결합하는데서부터 시작됐다.
좀더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독자조사를 기초로 책을 만들자는게 김 사장의
생각이었다.
독자회원제, 모니터링 그룹 운영등을 통해 책을 출판하기 전에 독자들의
성향과 책의 성패, 예상판매부수까지 철저히 파악했다.
편집부를 문학, 인문, 비소설, 역사 등 4개 팀으로 나눠 전문화시킨 점도
베스트셀러를 양산한 밑거름이 됐다.
이들 4개팀은 각자 기획에서 출판,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
책 한권에 대한 창구를 일원화함으로써 책임경영을 가능하게 한 것.
팀별로 담당분야에 대한 안목을 높이는 전문화 효과도 있었다.
덕분에 김 사장은 6개월만에 초보경영 딱지를 뗐다.
창업 반년만에 회사를 흑자로 돌려 놓은 것.
그 이후 연간 2백~3백%의 성장을 지속하며 출판업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창업이후 지금까지 97년 한해를 제외하고 줄곧 두자릿수 성장에 흑자경영을
지속해 왔다.
요즘 김 사장의 관심은 대중들이 쉽게 읽는 전문서적을 만드는데로 모아지고
있다.
"취미로서의 독서에서 벗어나 자기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독서로
독자들을 이끄는 중간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학자 등 전문가들을 "대중을 위한 글쓰기"로 끌어낼 참이다.
김 사장이 나섰으니 이미 한국의 독서분위기가 절반쯤은 바뀐게 아닐까.
출판계 파워우먼 김 사장에게서 풍기는 "성공예감"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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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 포인트 ]
(1) 포기의 경제학을 배워라
2년전쯤의 일이다.
영어교재를 만들기 위해 시장조사를 하고 저자와 계약하는 등 1년여의
준비끝에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을 즈음이었다.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니 성공할 가능성이 적었다.
그때까지 3천여만원이 투자된 상태.김 사장은 과감히 출판취소를 결심했다.
"책을 낸뒤 실패해 손해보는 것보다는 그때 중단하는게 훨씬 이익"이란
판단에서였다.
김 사장의 출판 성공률이 높은 비결.
(2) 베스트셀러는 철저한 마케팅에서 나온다
김 사장은 주력상품으로 내세울 책을 출판할 때는 내용은 물론 제목,
표지에 대해서까지 철저한 사전 시장조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핵심역할을 하는게 60여명의 모니터 요원이다.
소설 비소설 등 장르별, 페미니스트 등 성향별, 대형서점 관계자 등 1~2차
독차층 등으로 다양한 모니터링 그룹을 관리하고 있다.
책이 나오기 전에 내용이나 제목 등에 대해 코멘트를 받고 시장성을 테스트
해 주는게 이들의 임무다.
(3) 반짝셀러보다는 스테디셀러를 만들어라
푸른숲의 원칙중 하나가 정치인들의 책은 사절.
정치적 필요에 동원되거나 시류를 타면 장기적으로 출판사 이미지에 손해를
준다.
출판비용에 광고비까지 댈테니 책만 내달라고 부탁해 오는 정치인도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대신 시간이 흘러도 계속 주목을 끌 수 있는 책을 만드는데 주력했다.
8년간 80여만부가 팔려 나간 류시화의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등 푸른숲이 낸 책 가운데 스테디셀러가 많은게 이런 이유
에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