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환 < 한국은행 총재 >

[ 도서명 : ''통화신용정책운용 틀''
저자 : 영국중앙은행 중앙은행연구센터 M 프라이 박사 외 4인

(Monetary Policy frameworks in a Global Context)
Maxwell Fry 외 공저, Bank of England, Centre for Central Banking
studies, June 19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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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변화는 번개처럼 닥쳐오지만 좋은 변화는 굼벵이처럼 느리게
온다.

고통은 심각하게 느껴지는 반면 행복증대는 쉽게 감지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고통에 대한 불평은 천정부지로 증폭되지만 행복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은 사막에 퍼부은 물처럼 한없이 잦아든다.

우리의 지난 1년 반은 정말로 회상하기 싫은 고통이었다.

고통의 주범인 외환위기는 번개처럼 닥쳐왔으나 경기회복과 경제 틀 재편성
은 빠르다고는 하지만 충분히 감지되지 않고 있다.

경제 틀과 운용방식의 변화가 무엇을 약속하는가는 더더구나 인식되지
않는다.

그 가운데 하나가 "통화관리방식"의 변화다.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금융개혁관련법을 여러가지 개정했다.

통화관리를 담당하는 한국은행법 개정도 그중 하나다.

개정 한국은행법에는 "물가안정"을 중앙은행의 핵심 책임으로 명시하였다.

책임과 함께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한 반면에 은행감독권을 분리해서
금융감독원으로 통합했다.

법에 따라 한국은행은 작년부터 "물가안정목표관리제도-Inflation
Targeting "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경제계에서조차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불황 아래에서의 물가안정이 빚은 결과이면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시대감각이 뒤진 결과이면 또 다른 위기대처에 약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우리는 시대흐름 인식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는 이미 중앙은행의 역할을 물가안정으로 변화시켜 가고 있다.

물가안정이야말로 중앙은행의 핵심적이고 중요한 책임이며 의무이다.

이 경향에 맞춰 영란은행 중앙은행연구센터의 M.프라이 박사 외 4인이
"각국의 통화신용정책 운용 틀(Monetary Policy frameworks in a Global
Context)"( Maxwell Fry 외 공저, Bank of England, Centre for Central
Banking studies, June 1999)을 연구해서 발표했다.

필자는 지난 6월4일 영란은행 주최의 이 발표회에 토론자로 참가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통화정책 운용방식은 적자생존 원리에 따라
점진적으로 진보했으며 정부형태, 경제및 법체계, 금융제도,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관련 전문성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의 결론을 보면 90년대 들어서는 선진국일수록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통화정책의 법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사대상 77개국 중
72개국)

또한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의 핵심목표를 물가안정이라고 명시하는 것이
신뢰성을 높이고 경제주체의 행동양식에 명확한 신호를 보냄으로써 불안정을
해소하고 효율적 자원배분을 유도하여 성장력을 가속시키는 것으로 검증
되었다.

물가안정목표제를 통한 시장경제 질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에
독립성과 투명성, 책임성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도 검증되었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물가와 환율안정이 크게 훼손되었다.

우리나라는 26개의 선진국그룹에 속하면서도 중앙은행에 대한 평가는 투명성
만 4위이고 독립성은 37위, 책임성은 28위로 선진국 수준을 벗어났다.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에게는 분명히 타산지석이 되어야 할 것이나 불행히도
변화와 현실이 널리 인식되지 않고 있다.

제도와 관행의 개선이 매우 시급하다.

특히 지난 20여년간 중앙은행의 독립성.책임성.투명성이 강화되고 시장경제
질서가 잘 정비된 선진국일수록 중앙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제가 성공함으로써
물가의 장기 안정세를 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술혁신에 따른 비용절감과 충분한 공급에 기인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를 정책운용의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각국의 통화정책 운용 틀"에 관한 이 연구서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물가
안정목표제의 인식을 높이고 정착시키기 위하여 꼭 한번 읽어야 할 것 같다.

내용은 "대안적 통화관리 틀 아래에서의 물가안정에 관한 역사적 검증(2장)"
외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