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환율 정책방향이 드러났다.

엔화약세는 용인해도 강세는 그냥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10일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는 시장개입이었다.

일본은행은 이날 엔화가치가 전날의 달러당 1백19엔선에서 1백17엔대로
치솟자 즉각 시장에 개입했다.

개입규모는 10억달러 정도로 큰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지나친 엔강세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일본정부의 메시지를 전하기
에는 충분했다.

이번 시장개입은 올들어 두번째다.

일본은행은 지난 1월12일 엔화가치가 전날의 1백11엔선에서 1백8엔대로
급등하자 방어에 들어갔었다.

역시 엔화매도.달러화매입의 엔강세 저지용이었다.

당시 개입액은 50억달러로 이번보다 훨씬 많았다.

일본정부는 이처럼 엔화강세 저지에는 적극적이지만 엔화약세는 방관하고
있다.

지난달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25엔 근처까지 떨어졌을때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때 시장에서는 엔화가 1백30엔대로 내려갈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내에서는 엔화약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었다.

예전같았으면 "급격한 엔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발언이 쏟아졌을
상황이다.

하지만 그 반대였다.

일부 정부관리들은 엔약세를 부추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달 20일 엔이 달러당 1백24엔대에서 움직이고 있을때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은 "엔화시세가 그렇게 낮다고 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같은 일련의 사실은 "엔고 저지-엔저 용인"이 일본의 환율정책임을
파악할 수 있다.

이와함께 달러당 1백20엔 내외가 일본정부의 환율 목표권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이 엔강세 저지에 나선 것은 경기회복세를 굳히기 위해서다.

이번 시장개입을 보면 이를 분명히 알수 있다.

10일 일본의 지난 1.4분기 경제성장률이 1.9%로 발표되자 엔화가치는
순식간에 2엔가량 급등, 달러당 1백17.63엔까지 치솟았다.

이같은 엔화급등세는 일본으로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엔강세는 곧 일본기업들의 수출경쟁력 약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1.4분기 성장률은 예상치(마이너스 0.2%-플러스 0.5%)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이 성장세가 앞으로도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내수가 경기를 전혀 떠받쳐 주지 못하고 있다.

올들어서도 일본의 소매판매는 감소일로다.

작년보다 나아진게 하나도 없다.

지난 3월의 경우 전년동기보다 7.8% 줄었고 4월엔 4.8% 감소했다.

4월중 봉급생활자 가정의 소비도 2.1% 줄었다.

이로써 일본내수는 20개월 연속 오그라들었다.

이 때문에 경제전문가들은 일본경기가 1/4분기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회복세
로 들어섰는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엔화가 오르면 기업들의 수출이 부진해져 경기회복세는
1.4분기로 단명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행은 바로 이 점을 우려해 엔강세저지에 나선 것이다.

일본정부는 지금 경기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11일엔 75만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기 위한 긴급고용대책을 확정 발표했다.

올 가을에는 5천억엔규모의 추경예산도 편성할 계획이다.

이런 경기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환율안정이 필요하다.

이에따라 일본정부가 적어도 금년 한해동안은 엔고억제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