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엔 행운의 편지가 떠돌았다.

섬뜩한 저주가 담긴 얼굴없는 쪽지.

그 쪽지는 친구에게서 이웃으로 또 낯모를 누구에겐가로 무섭게 자가증식하
며 각각의 내면에 잠재된 죽음의 공포를 일으켜 세웠다.

12일 개봉되는 "링"(감독 김동빈)은 그 행운의 편지에서 모티브를 따온
영화다.

손으로 쓴 쪽지가 아닌 영상매체 비디오를 행운의 편지의 매개체로 등장시켰
다.

무한정한 복제가 가능한 일상생활속의 영상매체.

그 속에 원한 맺혀 떠도는 혼령의 저주를 담아 영상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공포심리를 건드린다.

카메라는 신문기자 선주(신은경)가 조카 상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미스
터리를 푸는 과정을 쫓는다.

선주는 조카 상미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다.

상미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세 친구가 한 날, 한 시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알 수 없는 불길함에 휩싸인다.

사건을 추적하던 선주는 그들이 여행중 묵었던 콘도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발견한다.

테이프는 기괴한 영상으로 가득 차 있다.

마지막 장면의 저주.

"너희는 1주일 후 이 시간에 죽을 것이다. 살고 싶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죽음의 올가미를 풀 열쇠는 지워져 있다.

선주는 꼼짝없이 죽음의 저주에 걸려들었다.

게다가 하나뿐인 어린 딸도 테이프를 봤다.

선주는 상미와 친구들을 부검했던 의사 최열(정진영)과 함께 비디오의
내용을 분석하며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서를 찾아 나선다.

비디오의 비밀이 하나씩 벗겨진다.

비디오의 영상은 강력한 초능력에 의해 염사된 것이고 그 주인공은 불행하게
살다 죽은 한 초능력의 여인이란 것.

선주와 최열은 그 여인의 시신을 찾아 묻어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린다.

선주는 저주에서 풀려나고 최열은 정해진 시간을 넘기지 못한 채 싸늘한
시체로 변한다.

왜 선주는 살아남고 최열은 죽어야 했을까.

영화는 최근 유행하는 호러물과 반대편에 서 있다.

의미없는 살육과 피, 짙은 성적유희와 유머를 섞는 대신 음산한 분위기의
영상을 논리적으로 쌓아가며 공포심의 한가운데를 파고 든다.

카메라의 시선은 느리고 담백하다.

대사도 절제돼 있다.

동양화식의 여백을 두고 그 공간을 관객들의 공포감으로 채우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쳤다.

극의 흐름을 묶고 풀어주는 기교가 부족했다.

클라이맥스 부분도 방점이 없어 다소 밋밋했다.

신은경은 호연이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서의 뻣뻣함을 털어버리고 죽음에 임박한
여인의 내면을 잘 형상화해냈다.

일본작가 스즈키 코지의 컬트호러 3부작중 첫번째 작품인 "링 바이러스"를
원작으로 했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이 이 소설을 토대로 지난해 만든 같은 제목의 영화를
우리정서에 맞게 꾸며 리메이크했다.

순제작비의 절반을 일본측에서 투자받아 만든 한.일합작 1호영화다.

20만달러에 일본으로 수출됐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