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훌륭히 업무를 수행해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힘든 고초를 겪던 시절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펼쳐 재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가와카미 다미오(하상민웅.73) 전 일본 국회의원이 최근
서울에 왔다.

가와카미 씨가 DJ구명운동에 나섰던 것은 일본사회당에서 국제국장을 맡고
있던 시절.

지난 80년 가을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사회당대회에 참석해 "김대중 씨를
사형시켜서는 안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그는 예정에 없던 결의안 채택을 세차례나 제창한후 당시 독일 사민당
위원장이었던 브란트 전총리에게 협력을 요청해 결국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통과 시켰다.

워낙 열심히 일을 추진한 탓에 브란트 전총리로부터 "당신의 이마에는
한국이라는 글씨가 씌여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의 결의안 채택은 국제적 압력이 돼 DJ의 부활에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DJ와 특별히 친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광주사태이후 사형이 선고
되는 것을 보고 이것만은 막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됐다고 한다.

그가 도운 것은 비단 김대통령만이 아니다.

27년간이나 옥살이를 했던 만델라 대통령의 구원운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만델라 씨가 석방된 것은 가와카미 씨가 국제국장을 그만둔 이후의 일이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 헤이트)을 무너뜨리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는 "내가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한 두사람이 우연히도 모두 대통령이 됐다"
고 말하면서 김대통령과 만델라 대통령은 "이긴 뒤의 자세가 좋다"는 공통점
이 있다고 평가한다.

정권을 잡은 뒤 복수보다는 포용정책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이 처음의 한국방문이다.

사회당에 속한 신분 때문에 그동안은 한국방문의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북한은 3번에 걸쳐 방문했고 김일성 전 주석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남북을 다 아는 인물인 그는 통일에 대해서는 "전쟁을 동반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북한도 독일같은 갑작스런 형태의 통일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현재 김대통령이 취하고 있는 햇볕정책이 한국이 취할 수있는
방법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67년부터 20년간 의원생활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도카이 대학 명예교수와
세이가쿠엔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크리스찬 대학인 세이가쿠엔의 객원교수가 된 것은 그가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사적인 목적으로 방문했지만 DJ구명운동을 한 것이 인연이 돼 8일
청와대로 이희호 여사를 예방하기도 했다.

그는 직접 전달하기는 다소 쑥스럽다며 이희호여사에게 전하는 일본전통의
5언절구를 기자에게 남겼다.

양국근징원(양국은 가깝고도 멀구나)
/초등청와대(처음 오른 청와대)
/중봉이여사(또 만나는 이여사)
/이화정유재(이화의 정은 여전하구나)

< 이봉구 국제부장 bklee@ >

< 가와카미 씨 약력 >

<>1925년 효고(병고)현 출생
<>도쿄대 서양사학과 졸업
<>67년 중의원 의원 당선(7기 20년 재직)
<>일본사회당 국제국장(77-82년)
<>90년 정계은퇴
<>현재 도카이 대학 명예교수 세이가쿠엔 대학 객원교수
<>저서 "현대정치가의 조건" "정치와 인간상" "사회당의 외교" 등 다수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