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분 < 방송작가 >


그녀가 없었다면 나는 골프와 영원히 결별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첫 필드 경험을 한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 조금만 방향을 맞춰 스탠스를 취할걸..."

"아, 터무니 없이 그 채만 쓰지 않았어도..."

당시 나는 이런 아쉬움까지 체크하며 욕심을 내기 시작했었다.

다음 라운드에선 매번 20, 30타는 만회할 것으로 생각됐던 것.

그러나 웬걸, 어설픈 욕심에 힘이 들어간 스윙은 언제나 가관이었다.

볼은 끊임없이 바닥을 훑으며 굴렀고 캐디는 다시 기록하기를 포기했다.

당연히 나의 수치심과 동반자에 대한 미안함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나의 늦은 플레이로 인해 뒤팀은 밀려오고.

"아, 이런 민폐를 끼칠바에야 다시는 필드에 나오지 말아야지"

그러나 분통과 의기소침으로 다시는 필드를 찾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차에
라운드 약속은 다시 생기고 말았다.

끌려가듯 참가한 그날 그녀가 나타났다.

2년전에 골프를 몇번 쳐본후 안해본 그녀라지만 "나보다야 못하겠어"라는
생각은 당연지사.

"아, 오늘도 이 낯선 동반자 앞에서 또 창피를 당하겠구나"라는 괴로운 마음
뿐이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실제 플레이에 들어가자 나보다 가관인 사람이 또 있었던 것이다.

2년간의 공백이 너무 컸던지 그녀의 샷은 내 샷에 비할바가 아닐 정도로
땅으로 곤두박질이었고 좌우로 흩어졌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무너지는 그녀의 샷앞에서 내 샷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치고 달리기"에 정신없던 나인데 한술 더 하는 그녀가 막아주고 있으니
나는 연습스윙까지 할 여유가 생긴 것.

자신감을 되찾자 볼은 붕붕 뜨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결별할뻔 했던 골프와 다시 화해했다.

누가 골프를 혼자만의 게임이라 했던가.

골프만큼 상대적인 운동도 없음을 난 실감했다.

내가 그녀로 인해 자신감을 얻었듯, 그녀는 오늘 더 심한 초보자를 만나
자신감을 얻고 있을지 모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