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기호황은 경쟁적인 소비덕분이라고 저명한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MIT대 교수가 1일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미국인들의 소비가 일부 지나친 측면은 있지만 이런 고소비가
갑자기 중단되면 최악의상황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날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지난 1년간 경제는 4%
성장했으나 소비는 5.5% 늘어나는 등 경기호황이 소비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인들의 고소비는 많은 주식을 갖고있는 일부 가구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가구들까지도 덩달아 수입보다 많은 지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루그먼교수는 고소비가 소비자들에게 행복감을 가져다 주지는 못하지만
고용을 창출한다는 점에서는 유익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미국의 경쟁적 소비는 일본의 소비침체보다는 낫다며 "미국이 국제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30년대의 공황이 되풀이되지 않은 것도 고소비
덕"이라고 분석했다.

그의 기고문을 요약한다.

지금 미국 중산층에서는 풍요의 혼란에 대한 불평이 늘어나고 있다.

형편없는 서비스와 지나친 번잡스러움 그리고 비싼 주거비 등등.

불평의 핵심은 돈을 많이 들였는데도 기쁨은 기대한 만큼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불평들은 대부분 사소하다.

하지만 한목소리로 쏟아지는 불평은 미국인의 소비성향에 폭넓은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징후다.

이같은 변화는 지나치게 빠르지만 않다면 건전하다.

미국은 8년째 경기호황을 누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소비증가율은 경제성장률만 못하다.

사람들은 좋은 시절이 영원할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저축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비자들이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다.

작년 1.4분기부터 올 1.4분기까지 경제성장률이 4%를 기록하는 동안 소비는
5.5% 증가했다.

휴대폰과 고급 욕조같은 가정용 내구재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가정용
오락기구판매는 12%나 증가했다.

이같은 소비 붐이 과연 좋은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만한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미국 가정들이 다소 무절제하게 소비를 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안그래도 저축률이 낮은 이 나라에서 저축은 지금 사라지다시피 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가정들이 풍요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임금상승률이 높지
않은데도 씀씀이가 너무 헤픈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많은 근로자들이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같은 불안으로 근로자들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있다.

그런데도 소비성향은 왜 높을까.

주식을 많이 보유한 가정들이 소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미국인들이 "사치열병"에 걸려 있는 것도 소비열풍의 한 요인이다.

연간소득이 3만달러인 가정이 6만달러인 가계의 소비를 흉내내고 있다.

이런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도 결국에는 소비에서 만족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소비에 가속도가 붙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도덕군자인체 한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지만 선조들의
현명함은 분명히 경험적으로도 증명된다.

결코 행복을 돈으로 살 수는 없다.

소비를 하는데도 만족을 할 수 없는 것은 "불편함" 때문이기도 하다.

차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한 집에 차가 한 대만 있었도 좋았다.

하지만 집집마다 차가 두 대씩 생기고 보니 교통체증으로 길에다 버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러나 더 큰 요인은 사람들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잣대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물질적으로만 보면 오늘날의 극빈자도 수십년 전의 중산층만큼 산다.

그렇지만 이들이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에는 변함없다.

일단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그 수준에 맞는 소비로는 환희를 느끼지 못한다.

최근의 소비에 대해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이 하나 있다.

소비는 행복을 만들어 내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일자리는 창출한다는 것이다.

미국식의 열광적인 소비는 소비를 거의 하지 않고 현금만 쌓아두는 일본식
소비보다는 낫다.

미국이 국제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30년대의 공황을 다시 겪지 않은
것도 활발한 소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들의 소비경쟁에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런 쳇바퀴 돌리기가 경제의 수레바퀴를 돌려 왔다.

지금 이순간 가장 비극적인 일은 이런 소비경쟁이 갑자기 끝나는 것이다.

희미하지만 미국인들의 소비문화가 바뀌고 있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수치상으로 드러나고 있지는 않으나 사람들이 고소비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조짐들이 엿보인다.

미국민들이 "몇년내에" 좀 더 현명하고 분별력있는 소비활동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너무 빨리 그렇게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정리=김용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