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를 추진중인 은행들이 정부의 은근한 압력으로 진퇴양난에 빠졌다.

달러가 넘쳐 환율운용과 수출 차질을 우려한 정부가 외자유치를 늦출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달러가 필요하면 국내 외환시장에서 사고 해외 지분매각보다는 국내 증자를
활용하라는게 정부 바람이다.

재정경제부는 최근 각 은행 국제금융 담당자들을 불러 정부의 환율.수출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규성 재경부장관은 지난달말 ABD(아시아개발은행) 총회때 동행한 은행장들
에게 이런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도 지난달 26일 은행에 지원하는 단기외화자금 금리를 리보
(런던은행간금리)+4%에서 은행의 해외차입금리보다 낮은 리보+2%로 낮췄다.

밖에서 달러를 사오지 말고 국내에서 조달하라는 것이다.

금감위는 자구노력의 속도를 높이도록 은행에 요청하고 있다.

금감위는 조건부 승인은행들의 1.4분기 경영정상화 이행실적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이다.

은행이 유치하려는 외자가 단기투기성자금(핫머니)만 아니라면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재경부와 금감위의 미묘한 입장차이로 은행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한빛은행은 합병전인 작년부터 5억~7억달러의 외자유치를 타진해 왔다.

올해말께 약 1조원의 증자도 계획중이다.

한빛은행은 정부 방침을 전해듣고 머뭇거리고 있다.

리먼브라더스 파리바은행을 통해 준비작업만 벌이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FRN(변동금리부채권)을 발행할때 2억달러가량 신청
받았지만 1억5천만달러로 잘랐다.

외국은행의 지분참여 추진도 하반기로 미룰 것으로 알려졌다.

골드만삭스에서 5억달러 유치키로 한 국민은행은 대주주인 재경부의 요청
으로 조건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주택은행이 다음달말께 지분 10~13%를 경쟁입찰로 해외매각하는 방안도
정부에선 탐탁치 않다는 반응이다.

은행들은 외자유치의 대안인 유상증자도 쉽지 않게 됐다.

최근 주가가 1백포인트 가량 급락,증자차질이 우려되는데다 금융당국에서
물량조절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환보유고가 6백억달러를 넘어서 정부의 고충을
이해못하는게 아니지만 솔직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기를 놓친 책임이 고스란히 은행 몫이 될 것을 이들은 우려하고 있다.

외자유치는 준비만도 6개월~1년이 걸린다.

단기적인 시장변화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금융선진화를 이룰수 있는
정책이 아쉽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오형규 기자 oh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