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업체인 케이.씨.테크.

이 회사 기획실의 이정훈(40) 이사는 집에 들어가는 날이 1주일에 1~2번
뿐이다.

지난해 10월 기획실이 안성공장으로 이사한 이후부터다.

공장에 딸린 기숙사에서 숙식하며 현장밀착 기획을 벌이고 있는 탓.

이 이사뿐 아니다.

기획실 팀원 4명 전원이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기획실의 임무는 회사의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하고, 기획.조정하는 일.

그런만큼 본사, 그것도 사장실에 가까이 있는 게 일반적이다.

케이.씨.텍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IMF 관리체제 이후 위기가 닥치면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속칭 "잘 나가던" 이 회사도 불황의 무풍지대는 아니었다.

97년 3백13억원이었던 매출이 98년에는 1백80억원으로 줄었다.

이 이사는 "위기상황일수록 현장중심의 경영,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는 데 착안했다.

두뇌(R&D센터)와 몸체(공장) 가까이에 있어야 올바른 구조조정이 이뤄지겠다
는 판단도 섰다.

그후 의사결정이 빠르고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해졌다.

공장 직원들에게 기획업무의 배경을 설명을 하고 의견을 수렴하는데도
그만이었다.

일주일에 이틀은 공장직원과 정례미팅을 열었다.

의사결정은 그자리에서 즉각 이뤄졌다.

위기경영 시스템으로서 효과를 발휘한 셈.

물론 사무실을 공장으로 옮겨야 할 만큼 회사 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이 회사의 매출액 대비 차입금 비율은 10%이하.

상장사중 재무구조가 건실하기로 손꼽히는 회사다.

그런데도 공장행에 오른데는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

단점도 있었다.

경기회복신호와 함께 구조조정보다는 신사업, 정보수집, IR(기업설명회)
등에 무게가 실리자 기획실의 서울행이 다시 조심스레 논의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어디든지 달려가는 "유연한 기획실".

급변하는 경영환경에는 이런 지혜경영이 필요한 게 아닐까.

< 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