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물리가 창단작품으로 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나.운.규"
(정복근 작, 한태숙 연출. 23일까지)는 춘사 나운규의 예술혼을 형상화한
창작극이다.

극은 두가지 "의문"을 축으로 전개된다.

"춘사에게 아리랑은 무엇이었을까"란 요즘 우리의 의문과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란 춘사 자신의 물음이다.

춘사와는 실과 바늘 같은 사이였던 연희전문 출신의 영화인 윤봉춘의 기억을
더듬어 결국은 하나인 이 두가지 의문을 풀어간다.

춘사에 대한 윤봉춘의 기억은 시간순서대로 전개된다.

민족영화 1호인 "아리랑"(1926년)을 만들어 당대 영화계 중심에 우뚝 섰던
춘사의 모습.

이후 아리랑을 능가하는 작품을 내놓지 못해 좌절끝에 36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를 보여준다.

당시의 시대상은 물론 윤마리아와의 운명적인 사랑, 조강지처 조정옥과의
관계 등 춘사의 사생활까지 짚는다.

춘사가 아리랑에 대해 부여했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일제에 의해 빼앗겼던 우리민족의 얼을 일깨워줄 "암호"이며 "내면의
울림"이었음을 극은 보여준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전기물의 흐름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배우들의
탄탄한 앙상블이다.

특히 12일 낮공연에서 무대 뒷편으로 추락, 머리가 4cm나 찢어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이튿날부터 공연을 강행했던 강신일(춘사역)의 프로정신이
돋보인다.

광기어린 그의 연기는 춘사가 되살아 나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무대를
휘어잡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춘사가 아리랑에 대한 의미를 찾아 영화로 만드는 첫 장면의 농밀한
에너지를 끝까지 지속시키는 뒷심이 부족했다.

윤소정이 공연에 들어가기에 앞서 아버지 윤봉춘을 회상하며 극의 의미를
설명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짧은 연극이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