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5년 제작한 두번째 앨범 "고무신"은 한국적 정서와 민중을 상징하는
음반이었습니다. 앨범자켓 촬영장소로 우리집 뒷담을 택했죠. 불그죽죽한
녹에 쩔은 가시철사 사이에 고무신 한켤레를 매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군사정권과 한 맺힌 우리 현대사의 틈바구니에서 고난을 받는 민중의 모습을
그린 거죠"

군사정권이 불순한 내용을 담았다고 마스터테잎까지 불태워버린 한대수의
75년 앨범 "고무신"이 복각앨범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그가 미국에 소장하고 있던 LP판을 복각작업을 통해 CD로 다시 제작했다.

여기에 지난 97년 일본 후쿠오카 라이브공연 실황 음반을 보태 2개의 CD와
사진시집으로 "1975 고무신서울-1997 후쿠오카라이브"(도레미레코드사)란
앨범을 만들었다.

대표곡 "물좀 주소" "행복의 나라" "바람과 나" 등 모두 17곡이 들어있다.

(02)3446-0527.

한대수는 지난 68년 치렁치렁한 머리를 늘어트리며 반전평화 민중의 삶 등을
노래로 표현한 국내최초의 싱어송라이터.

70년대 포크음악을 소개하며 당시 대중가요계에 일대 격변을 몰고온 장본인
이다.

송창식 김민기 등 포크가수들의 스승이자 선배로 포크음악의 텃밭을
일궜지만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위해 75년 다시 미국으로 떠나야 했던 비운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 장규호 기자 seini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