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심판 전치주의"란 말이 있다.

당국의 행정처분에 불복할 경우 바로 법원에 행정소송을 낼 수 없고 반드시
행정심판을 먼저 거쳐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행정심판 전치주의는 국민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해 3월 폐지됐다.

대신 행정심판이나 행정소송중 하나를 선택할수 있도록 했었다.

당시 사법개혁 차원에서 이뤄진 일종의 규제개혁이었다.

그런데 불과 1년만에 이런 규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내용은 30일부터 운전면허 취소나 정지처분를 받은 사람이 구제를 받고자
할 경우 반드시 행정심판을 거치도록 한 것이다.

행정심판을 전담하는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는 행정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드는 변호사 비용 등을 줄이기 위해 행정심판을 의무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행정심판을 거치면 돈 들이지 않고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과연 그럴까.

억울한 행정처분을 행정심판으로 완벽하게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행정심판이든 행정소송이든 빠르고 확실한 쪽을 선호토록 하는게 정부가 할
일이다.

돈이 없으면 행정심판을 청구할 것이고, 행정소송이 행정심판보다 더 효율적
이고 경제적이라고 판단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이는 결국 민원인의 결정 문제다.

단순히 변호사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행정심판을 먼저 제기하라는 식의
주장은 웬지 설득력이 없다.

그 주장대로라면 영업정지나 취소 처분을 받은 업주들도 행정심판을 반드시
거치도록 해야 맞다.

이번 개정으로 운전면허를 다시 회복하려는 사람들은 골탕을 먹을 수밖에
없다.

법 개정 사실을 모른채 행정심판을 거치지 않고 바로 법원을 찾아갔다
되돌아오는 헛걸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또 60여일이 소요되는 행정심판 결과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불이익을 감수
해야 한다.

게다가 행정심판으로 구제를 받지 못했을 경우 다시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불편함도 겪어야 한다.

과거와 달리 행정소송도 2심제가 아니라 3심제로 바뀐터라 시일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행정은 쓸데없는 규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가만둬도 될 사안에 이런 저런 이유를 붙여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규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규제개혁을 범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규제를
신설하는 구태를 보는것 같아 씁쓸하다.

< 한은구 정치부 기자 to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