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창립 33돌을 맞은 ADB(아시아개발은행)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ADB는 설립취지에 걸맞게 그동안 역내 투자촉진과 균형개발을 위해 노력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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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들어 급속도로 재무상태가 악화되며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자본적정비율과 유동성비율이 크게 나빠지고 있는 것.

이 탓에 국제금융시장에서 돈을 빌릴 때 차입금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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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B가 곤경에 처한 것은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비롯됐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에 거액의 구제금융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출재원이 거의
바닥났다.

해결책으로 일반자본금 5차 증자와 아시아개발기금(ADF)8차 증자를 모색하
고 있지만 이것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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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회에서도 이 문제가 핫이슈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57개 회원국간에 이견으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대 출연국이자 ADB의 양대산맥인 미국과 일본이 현저한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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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ADB를 적극적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일본은 ADB를 "엔블럭"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하려 한다.

이는 일본이 최근 "아시아통화위기 지원제도" "일본특별펀드"등 갖가지
명목으로 ADB에 돈을 낸데서도 읽을 수 있다.

일본은 또 금융위기를 겪는 국가가 발행하는 채권에 보증을 서주기위해,
심각한 사회위기에 처한 국가에 대해 차입금 이자를 보전해주기 위해 모두
30억달러(3천6백75억엔)를 ADB에 쾌척하기도 했다.

일본은 게다가 증자에도 적극적이다.

그러나 미국은 난색이다.

냉전체제가 끝난후 이 지역을 지원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것이다.

ADB 고위관계자는 "미국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표현했다.

회원국간 합의가 없으면 증자는 이뤄지지 않는다.

미국은 "일반 융자금리를 올리자"는 카드를 대안으로 내놓는다.

금융위기국가에 리보+0.4%의 금리로 지원하는건 말도 안된다는게 미국의
논리다.

IMF가 리보+3%로 빌려주듯 벌칙성 금리를 매기자는 것이다.

미국입장에 동조해 유럽국가등 일각에선 기존 대출금리마저 올리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40억달러를 지원받은 한국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방안이다.

당장 이자를 더 많이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금리 인상은 중국이 팔을 걷어부치고 반대한다.

중국은 국민소득이 낮은데도 불구하고 연1%짜리 특별융자를 받지 않고 리보
에 0.4%를 더한 일반자금 금리를 스스로 택해 ADB에 도움을 줬다는 점을 들며
금리인상에 반발하고 있다.

중국은 ADB의 두번째 차입국.총 대출금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위기탈출을 위한 ADB의 또다른 카드는 한국에 대한 조기상환 압력.

이사회가 열릴 때마다 미국 유럽국가등은 이 문제를 걸고 넘어진다.

"다른 외채는 갚으면서 ADB 돈을 왜 갚지 않느냐"는 불평도 나온다.

한국이 쓰고 있는 자금은 7년만기.

현재 국제금융시장을 감안할 때 이만큼 싼 자금도 없다.

그래서 한국은 만기까지 갚지않겠다는 입장이다.

연차총회에 참석중인 이규성 장관도 이를 분명히 했다.

이처럼 ADB를 둘러싼 상황은 복잡하지만 ADB는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사실상 끝났다고 하지만 ADB는 "후폭풍"을 맞아 기력을
펴지 못하고 있다.

32차 연차총회에 참석한 국제금융 전문가들은 "아시아국가들이 제2의 금융
위기를 맞지 않기위해서도 ADB의 위상정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 마닐라= 이성태 기자 stee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