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훌륭한 경제학자와 경제 전문가라도 기득권익 계층의 이해와 다른
학자들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는다.

특히 사상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

그것은 우리가 앞선 분들의 뒤를 밟고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현재를
꾸려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대사로 인식된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70년대말 이후 세계 정치.경제를 지배해온 자유주의 사상의
장래는 어떨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제통계국장을 지낸 데이비드 헨더슨(David
Henderson)이 이 의문에 답하고자 "경제적 자유주의의 부침: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The Changing Fortunes of Economic Liberalism, Yesterday,
Today and Tommorrow(The Institute of Econimic Affairs, 1998년 간행)]을
저술(전5부와 부록, 총 1백29쪽)했다.

1930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던 고전적 자유주의도 30년 이후 70년대
까지는 그 영향력이 매우 약화되었다.

세계 대공황 이후에는 고전적 자유주의 대신 정부개입을 정당화하는
케인즈적 수정 자본주의 사상이 지배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0년대말 이후에는 다시 정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비효율적으로 인식하는 신자유주의 시대로 전환했다.

그 이유는 세가지다.

첫째 EC(유럽공동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WTO(세계무역기구)처럼
경제통합이 이루어지면서 각국 정부의 경제규제와 개입이 비효율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둘째 정보통신기술 발전이 초국가적 교류거래를 촉진시켰다.

셋째 장기간 경제성장으로 각국의 국민소득과 국부가 축적되고 경제구조가
바뀌면서 반자유주의적 노조를 싫어하는 한편 정부의 공적부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신 중산층이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이들 세 조건은 정부개입을 본질적으로 축소하는 성향을 지닌다.

현실정책에 신자유주의 철학을 구현한 나라는 이들 세 조건이 충족되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이다.

그런데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자유주의 사상은 스스로 다른 체제와 사상을
자기와 닮은꼴로 만드는 성향(모사성)을 지닌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도 90년대 이후 자유화를 추진했으나 결과적으로
참담한 외환위기가 초래되었다.

그리하여 시대의 흐름은 한편으로는 자유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역할
(Grabbing Hand)의 강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지금은 세계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사상이라고 해도
영원하게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

경제적 신자유주의도 스스로의 모순을 배태하고 있기 때문에 단선적 발전이
보장되지 못한다.

왜 그런가.

첫째 자유주의 경제의 본질은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기 책임성과 성과주의
다.

그러나 이 사상은 기업인과 정부 요인 등 지배층을 빼고는 쉽게 수용되지
않는다.

공정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계층별로 매우 크기 때문이다.

둘째는 정부역할이 필요하고 강조되는 1)환경 보호 2)고용, 교육, 주택,
신용이용 등 공공재의 공급 필요성 때문이다.

셋째 모든 사회적 악을 비판하는 반경제, 반자본주의적 포스트 모더니즘
(Post-modernism)의 부상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은 신자유주의의 세계지배 전망을 정확하게 예단할 수 없다.

더구나 사회주의 체제 붕괴이후 자유 자본주의 체제와 사상을 역사의
종말로 인식한다던가 최소한 정부는 항시 최선이고 모든 정부의 역할은
언제나 악이라는 절대 자유주의 사상의 시대가 역사의 완결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사상을 기조로 한 사회 경제 틀을 구성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

역사가 언제나 현대사이고 단선적이 아니라면 우리가 지금 세계사에 조응
하고 이길 수 있는 사상과 경제 틀은 무엇일까.

헨더슨의 책이 그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시대에 맞는
사상과 경제 틀 모색을 위한 상상력만은 충분히 높여 줄 수 있을 것이다.

< 원제 > The Changing Fortunes of Economic Liberalism, Yesterday,
Today and Tommorrow (The 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1998년 간행)

전철환 < 한은 총재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