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광속경제] 제2부 : (10) '보잉'..'B777' 신속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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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잉사의 가장 큰 항공기 제작공장이 있는 시애틀 북쪽 에버렛.
12만평 규모의 이 공장은 보잉이 자랑하는 최신예 항공기 "B 777"의 주력
조립장이다.
지난 95년 유나이티드에어라인(UA)이 처음 운항하기 시작한 첨단기종인
B 777.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해 실제로 하늘에 띄우는데 4년밖에 걸리지 않은,
그러면서도 가장 안전한 항공기다.
새로운 기종의 항공기를 개발하는데 7~8년에서 10년 가까운 기간이 걸렸던
것을 감안하면 B777은 항공기 제작의 스피드혁명을 가져온 주역이다.
더욱이 이 항공기를 만들어 내는데는 단 한장의 종이 설계도면도 작성되지
않았다.
오로지 컴퓨터와 통신망으로 제작된 최초의 항공기로 더 유명하다.
B 777을 한 장의 종이 설계도면 없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만들고 성공적
으로 하늘에 띄울수 있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에버렛 공장에서 만난 보잉의 설계 엔지니어 그리스월드 힉스씨는 "최첨단
컴퓨터 응용기술과 디지털 네트워크가 통합된 CATIA 시스템이 그것을 가능
하게 했다"고 말한다.
보잉의 "컴퓨터지원 3차원 쌍방향 응용(Computer Aided Three-dimension
Interactive Application) 시스템".
설계와 부품조달 생산에 걸친 모든 정보를 기획 설계 생산 성능시험 판매
등 회사내 각 부서와 조립공장 부품공급업체 등 모든 관련 사업장이 동시에
공유함으로써 가장 빠른 속도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광속상거래
(CALS) 방식의 하나다.
보잉이 이같은 기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말이었다.
당시만해도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해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면 부품이 잘못된
곳에 들어가거나 서로 겹쳐 조립되는 "부품충돌" 등의 에러가 자주 발생했다.
수백만개의 부품 가운데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것이 너무 많았던 탓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잉은 3차원 입체방식의 컴퓨터지원설계 및
생산(CAD/CAM)기술을 도입, 항공기 제작에 적용했다.
보잉은 원래 프랑스 다소사에서 개발한 이 기술을 활용, 수백만개의 부품을
나무로 깎아 조립해 보는 종전의 "모형(목업)제작" 대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는 방식으로 오류를 줄여 나갔다.
엔지니어들은 컴퓨터 가상공간에 설계도면대로 각종 부품을 미리 입체적
으로 짜맞춰 보는 과정을 통해 잘못된 곳을 알수 있었다.
이같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보잉은 90년 10월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다름아닌 "종이 설계도면 없는 비행기 만들기" 777 프로그램이었다.
보잉은 이를 위해 컴퓨터 메이커인 IBM과 "상호협력(Working Together)" 동
의서에 서명했다.
새로운 항공기를 만들어 내는데 최대한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B 777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종이문서다.
시애틀 부근 퓨젯사운드지역엔 1천7백여개의 보잉사 협력업체가 곳곳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전세계에는 2백50여 디자인팀이 깔려 있고 위치타와 필라델피아 등 미국내
다른 곳에도 보잉산하 공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는 수많은 부품 공급업체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보잉 본사의 대형 IBM 메인프레임과 연결됐다.
조립공장 부품공급업체 디자인팀 성능시험실 등에 있는 모든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는 본사의 중앙 컴퓨터와 맞물려 설계 부품조달 시험등의 정보는 이들
워크스테이션에 동시에 흘렀다.
고속 통신망을 통해서다.
항공기 조립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777에 들어간 핵심부품의 20%는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을 비롯한 하청업체들은 태평양 바다밑에 깔린 전용
광케이블을 통해 미국 보잉 본사와 모든 작업정보를 주고 받았다.
에버렛 설계실에서 부품의 설계가 바뀌면 그 정보는 바로 시애틀 본사와
일본 하청공장에 전달되고 동시에 바뀐 설계로 부품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부품이 깎여 나온 그 시간 미국 실험실에서는 부품성능시험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동시에 이뤄졌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부품공장 등이 시차없이 컴퓨터속 사이버공간에서
설계 제작 시험 등을 한꺼번에 진행한 것이다.
보잉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객인 세계의 항공사와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 고객이 원하는 항공기
디자인이나 부품 성능을 설계에 반영시켰다.
고객들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의 입체공간에서 미리 만들어본
비행기 내부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불편한 점을 수정토록 요구했다.
모든 것은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의해 "즉시" 이뤄졌다.
설계자의 머리속에 있던 B 777은 이런 과정을 거쳐 4년만에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수십만장의 설계도면을 없앤 첫 항공기였다.
보잉은 설계도면만 없앤게 아니었다.
개발기간을 줄임으로써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수 있었다.
부품은 더 정밀해졌고 항공기의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생산성 향상효과도 대단했다.
설계 모형제작 조립 시험 등에 투입되는 인건비의 30%를 줄였다.
설계변경 비용도 이전 기종인 B 767을 만들때보다 20% 이하로 감소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부품조립과정을 거치면서 부품불량률은 종전 15%에서
5% 밑으로 떨어졌다.
고객의 요구를 가장 많이 반영한 안전한 항공기 B 777은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장악했다.
유럽 에어버스와의 경쟁에서 단숨에 75%의 시장을 차지한 것이다.
보잉의 실험은 디지털 광속경제 시대의 생산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생산은 더 이상 생산자만의 고유영역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디지털 네트워크로 직접 연결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가장
빠르고 싸게 만들어 직접 공급할수 있는" 새로운 생산이론이다.
< 시애틀 = 손희식 기자 hssohn@ >
-----------------------------------------------------------------------
<> 본사 : 워싱턴주 시애틀
<> 설립 : 1916년7월15일
<> 종업원수 : 23만8천명
<> CEO : 필 콘디트 회장
<> 싯가총액 : 3백71억달러
<> 98년 매출 : 5백62억달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9일자 ).
12만평 규모의 이 공장은 보잉이 자랑하는 최신예 항공기 "B 777"의 주력
조립장이다.
지난 95년 유나이티드에어라인(UA)이 처음 운항하기 시작한 첨단기종인
B 777.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해 실제로 하늘에 띄우는데 4년밖에 걸리지 않은,
그러면서도 가장 안전한 항공기다.
새로운 기종의 항공기를 개발하는데 7~8년에서 10년 가까운 기간이 걸렸던
것을 감안하면 B777은 항공기 제작의 스피드혁명을 가져온 주역이다.
더욱이 이 항공기를 만들어 내는데는 단 한장의 종이 설계도면도 작성되지
않았다.
오로지 컴퓨터와 통신망으로 제작된 최초의 항공기로 더 유명하다.
B 777을 한 장의 종이 설계도면 없이 이처럼 짧은 기간에 만들고 성공적
으로 하늘에 띄울수 있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에버렛 공장에서 만난 보잉의 설계 엔지니어 그리스월드 힉스씨는 "최첨단
컴퓨터 응용기술과 디지털 네트워크가 통합된 CATIA 시스템이 그것을 가능
하게 했다"고 말한다.
보잉의 "컴퓨터지원 3차원 쌍방향 응용(Computer Aided Three-dimension
Interactive Application) 시스템".
설계와 부품조달 생산에 걸친 모든 정보를 기획 설계 생산 성능시험 판매
등 회사내 각 부서와 조립공장 부품공급업체 등 모든 관련 사업장이 동시에
공유함으로써 가장 빠른 속도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하는 광속상거래
(CALS) 방식의 하나다.
보잉이 이같은 기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80년대 말이었다.
당시만해도 새로운 항공기를 설계해 실제로 제작에 들어가면 부품이 잘못된
곳에 들어가거나 서로 겹쳐 조립되는 "부품충돌" 등의 에러가 자주 발생했다.
수백만개의 부품 가운데 크기와 형태가 비슷한 것이 너무 많았던 탓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보잉은 3차원 입체방식의 컴퓨터지원설계 및
생산(CAD/CAM)기술을 도입, 항공기 제작에 적용했다.
보잉은 원래 프랑스 다소사에서 개발한 이 기술을 활용, 수백만개의 부품을
나무로 깎아 조립해 보는 종전의 "모형(목업)제작" 대신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하는 방식으로 오류를 줄여 나갔다.
엔지니어들은 컴퓨터 가상공간에 설계도면대로 각종 부품을 미리 입체적
으로 짜맞춰 보는 과정을 통해 잘못된 곳을 알수 있었다.
이같은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보잉은 90년 10월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해
보지 못한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다름아닌 "종이 설계도면 없는 비행기 만들기" 777 프로그램이었다.
보잉은 이를 위해 컴퓨터 메이커인 IBM과 "상호협력(Working Together)" 동
의서에 서명했다.
새로운 항공기를 만들어 내는데 최대한 협력한다는 내용이다.
B 777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있어서 유일한 종이문서다.
시애틀 부근 퓨젯사운드지역엔 1천7백여개의 보잉사 협력업체가 곳곳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전세계에는 2백50여 디자인팀이 깔려 있고 위치타와 필라델피아 등 미국내
다른 곳에도 보잉산하 공장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는 수많은 부품 공급업체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보잉 본사의 대형 IBM 메인프레임과 연결됐다.
조립공장 부품공급업체 디자인팀 성능시험실 등에 있는 모든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는 본사의 중앙 컴퓨터와 맞물려 설계 부품조달 시험등의 정보는 이들
워크스테이션에 동시에 흘렀다.
고속 통신망을 통해서다.
항공기 조립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777에 들어간 핵심부품의 20%는 일본에서 만들어졌다.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을 비롯한 하청업체들은 태평양 바다밑에 깔린 전용
광케이블을 통해 미국 보잉 본사와 모든 작업정보를 주고 받았다.
에버렛 설계실에서 부품의 설계가 바뀌면 그 정보는 바로 시애틀 본사와
일본 하청공장에 전달되고 동시에 바뀐 설계로 부품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 부품이 깎여 나온 그 시간 미국 실험실에서는 부품성능시험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동시에 이뤄졌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부품공장 등이 시차없이 컴퓨터속 사이버공간에서
설계 제작 시험 등을 한꺼번에 진행한 것이다.
보잉의 실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고객인 세계의 항공사와 고속 네트워크로 연결, 고객이 원하는 항공기
디자인이나 부품 성능을 설계에 반영시켰다.
고객들은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의 입체공간에서 미리 만들어본
비행기 내부를 걸어 다녔다.
그리고 불편한 점을 수정토록 요구했다.
모든 것은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의해 "즉시" 이뤄졌다.
설계자의 머리속에 있던 B 777은 이런 과정을 거쳐 4년만에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수십만장의 설계도면을 없앤 첫 항공기였다.
보잉은 설계도면만 없앤게 아니었다.
개발기간을 줄임으로써 막대한 비용을 절감할수 있었다.
부품은 더 정밀해졌고 항공기의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생산성 향상효과도 대단했다.
설계 모형제작 조립 시험 등에 투입되는 인건비의 30%를 줄였다.
설계변경 비용도 이전 기종인 B 767을 만들때보다 20% 이하로 감소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부품조립과정을 거치면서 부품불량률은 종전 15%에서
5% 밑으로 떨어졌다.
고객의 요구를 가장 많이 반영한 안전한 항공기 B 777은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장악했다.
유럽 에어버스와의 경쟁에서 단숨에 75%의 시장을 차지한 것이다.
보잉의 실험은 디지털 광속경제 시대의 생산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생산은 더 이상 생산자만의 고유영역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디지털 네트워크로 직접 연결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가장
빠르고 싸게 만들어 직접 공급할수 있는" 새로운 생산이론이다.
< 시애틀 = 손희식 기자 hssoh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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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 워싱턴주 시애틀
<> 설립 : 1916년7월15일
<> 종업원수 : 23만8천명
<> CEO : 필 콘디트 회장
<> 싯가총액 : 3백71억달러
<> 98년 매출 : 5백62억달러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