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 < 한성대교수, 정책학 >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규제개혁위원회가 출범한지 1년이 지났다.

그 동안 열심히 일했고 실적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갖고 있는 전체 규제의 44.7%에 달하는 4,973건의 폐지와
20.7%에 해당하는 2,298건의 개선이 있었다.

단기간에 이루어진 양적 성과나 과감한 규제정비 방식으로 볼 때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IMF관리체제 이후 단행된 수많은 개혁 중에서도 규제개혁이
그래도 가장 잘 되었다는 평가를 국내외적으로 받고 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자화자찬이나 그 동안의 성과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국회의 법률 제.개정과정에서 개혁입법의 변질도 있었고 아직 처리되지 못한
채 잠자고 있는 법률안도 있다.

집행 및 단속기능이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칙도 아직 바뀌지 않고
있으니 개혁이 제대로 됐다고 볼 수 없다.

규제개혁은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개혁이 잘 마무리되지 못하면 바로 개악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2년 차에 접어든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언할게 있다.

첫째, 개혁집행능력의 강화가 필요하다.

개혁 아이디어가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집행될 때 개혁효과가 큰 것이다.

강한 정부는 집행을 제대로 하는 정부이다.

말만 앞서는 정부는 약한 정부다.

좋은 정부와 나쁜 정부가 있다면 약한 정부는 나쁜 정부라 할 수 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기획보다는 개혁의 효과적 집행관리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소문만 요란하고 체감효과가 없다는 일반 국민과 기업들의 비난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둘째, 정책목적상 필요해서 도입되었지만 규제방법이 잘못된 기존 규제를
고품질 규제로 개선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규제에도 고비용 저효율의 원인이 되는 소위 "저질 규제"와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규제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는 시장친화적
고품질 규제가 있다.

새로 도입되는 신설 규제뿐만 아니라 기존규제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행정규제기본법상의 규제영향분석제도가 전문적이고 효과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지금은 유명무실하게 적용되고 있어 제도의 도입효과가 별로 없거나 악용
소지가 있다.

주기적으로 규제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5년 한도의 한시적 규제일몰
제도도 보다 많은 규제에 확대 적용되어야 한다.

셋째, 규제전문가를 양성하고 우대하여야 한다.

오늘날 행정과 정책관리는 급속도로 첨단화 되어가고 있다.

구태의연한 사고, 정책, 제도, 행정수단으로는 국가발전과 국리민복을
제대로 달성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규제연구에 대한 풍토도 진작하고 규제공무원에 대한 전문적 교육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넷째, 관료사회에 개혁과 변화 마인드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규제의 일부가 없어졌다고 해서 변화가 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규제를 만들어내고 집행하는 관료들의 의식과 행태가 바뀌지 않고는
백년하청격이다.

오히려 권위적이며 행정편의주의적 행정수단으로 이용되어왔던 규제의
폐지는 무사안일, 복지부동의 원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권위적 관료문화의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소위 행정내부에 DNA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최고경영자인 제네럴 일렉트릭사의 잭 웰치
사장의 말처럼 "얼굴은 보스를 향해 있고 엉덩이는 고객을 향하고 있는"
조직인의 자세가 전형적 관료주의적 행태라 할 수 있다.

촌철살인적 표현이다.

자세를 거꾸로 바꿔야 한다.

다섯째, 이상과 같은 총론적, 기반구축적 차원의 노력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목표달성에 가장 비용효과적인 부문을 골라 집중 공략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철저한 평가를 통해 개혁의 부문별 우선 순위와 완급을 정해야 한다.

국제기관에 의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된 부문을 우선적 개혁대상으로
삼되 민원이 많은 부처, 부패와 변화에 대한 저항이 높 은 분야,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탈피하지 못한 분야 등도 주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규제개혁위원회의 할 일이 참으로 중요하고도 많다.

그러나 현재의 민.관합동기구인 규제개혁위원회는 그 법적 성격이나 위상,
국무조정실내에서의 사무국의 지원체제, 위원회의 권한과 책임간의 불일치
등에 있어 문제가 많다.

더 이상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방식으로 일을
수행하고자 해서는 안된다.

규제개혁위원회가 스스로 일을 잘 해나갈 수 있도록 체제를 시급히 정비
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