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SABRE)와 항공사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항공사를
팔겠다"

아메리칸항공(American Airlines.AA) 사장을 지낸 로버트 크랜댈이 재임
당시 했던 말이다.

미국 최대 항공회사 최고 경영자의 고백 치고는 매우 충격적이다.

세이버(Semi-Automated Business Research Environment)는 인터넷을
이용한 AA의 종합 여행예매 시스템이다.

겉으로만 보면 단순한 인터넷 사이트인 세이버가 오히려 수백대의 항공기
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 시스템은 고객이 인터넷을 통해 항공권 구입에서부터 호텔.렌터카예약
각종 여행상품구매 등을 한꺼번에 처리할수 있게 해준다.

요즘은 AA의 여객운송 수입에 맞먹는 추가수입을 올려주고 있다.

세이버는 전세계 70여개국 3만개 여행사를 거미줄처럼 묶어 놓고 있다.

인터넷망을 통해서다.

여행객은 PC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이 망에 들어가 4백여개 항공사,
50여개 렌터카업체체인, 3만9천여개 호텔과 접촉해 바로 예약할 수 있다.

AA는 이 시스템을 무기로 미국 항공여객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AA는 지난 70년대 미국내 여객시장을 놓고 유나이티드 에어라인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갖가지 시도가 이뤄졌다.

세이버의 개발은 그 시도의 하나였다.

AA는 컴퓨터통신망을 통해 고객이 직접 항공사에 가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
근처 여행사에서 항공좌석을 예약할 수 있는 시스템을 76년 개발, 미국 각지
여행사에 단말기를 깔았다.

세이버의 초기모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세이버의 진면목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96년부터였다.

AA는 그해 6월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해 여행정보를 제공하고 항공권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세이버는 인터넷과 결합되면서 폭발적인 잠재력을 발휘했다.

누구든 집이나 사무실에서 PC를 통해 AA의 인터넷 홈페이지(www.aa.com)에
접속, 항공여행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얻고 예약을 할수 있게 됐다.

당장 AA의 예매센터 일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과거 이 회사 예매센터에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항공권 구매보다
비행시간이나 잔여좌석을 조회하는 문의였으나 문의전화가 대폭 감소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비행시간 스케줄이 어떻게 짜여졌는지, 남은 좌석은
얼마나 되는지, 항공권 가격이 얼마인지 한눈에 알수 있다.

우선 항공권 판매비용이 크게 줄였다.

이 회사 고객의 10% 이상이 인터넷과 PC통신으로 발급받은 전자티켓을
사용하고 있다.

전자티켓은 고객이 이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약을 하고 그 결과를
프린트출력한 형태로 발급된다.

항공사와 고객이 항공권을 직접 팔고 사게 됨으로써 부대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발매대행 수수료, 마케팅 및 광고비용, 인건비, 통합예약센터 운영비 등
AA가 지출한 부대비용은 예전에 연간 1백20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 세이버는
이 비용을 대폭 줄였습니다. 여행사를 거쳐 항공권을 팔게 되면 관련 비용만
평균 8달러가 지출돼야 했으나 전자티켓이 도입되면서 그 비용은 1달러로
줄었습니다"(존 사무엘 온라인 마케팅 담당이사)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세이버의 이같은 효과도 고객들이 적극 활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정보시스템담당 하퍼 부사장은 그래서 "어떻게 하면 고객이 종전의 종이
티켓보다 발권비용이 싼 전자티켓을 쓰도록 유도하는가가 최대 과제"라고
말한다.

AA는 이를 위해 고객이 인터넷에서 전자티켓으로 예매할 경우 마일리지
보너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퍼 부사장은 "이제 고객들은 인터넷에서 직접 항공권을 예매하고 원하는
좌석을 선택하며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전자티켓 시스템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귀뜸했다.

세이버는 항공여객산업 정보시스템의 모델이 됐다.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을 비롯해 델타 텍사스항공 등 유수 항공사들이
세이버를 모델로 예약시스템을 구축했다.

국내 항공사도 이 시스템을 표본으로 삼을 정도다.

AA는 세이버를 활용해 추가 수입원을 창출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나 접속할수 있는 인터넷망의 특성을 살려 여객기의 남은
좌석을 인터넷 경매에 부치는 사업에 나섰다.

"주말까지 자리가 남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고객에겐 특별 할인서비스가
제공됩니다"

AA가 제공하는 넷세이버 서비스에 가입한 고객은 매주 이같은 내용에
특별할인 요금목록이 첨부된 전자메일을 받는다.

AA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주간 예매실적을 확인하고 예매율이 저조한
항공편을 가려낸다.

그리고 1백만명이 넘는 넷세이버 가입자를 대상으로 전자메일을 발송한다.

넷세이버 회원에 가입하려면 이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스페셜 메뉴의
넷세이버를 찾아 안내에 따라 가입절차를 밟기만 하면 된다.

이같은 인터넷 경매방식으로 가입자는 운이 좋을 경우 원하는 항공권을
절반 이하 가격에 살 수 있게 됐다.

회사측은 항공편의 공석률을 20% 이상 줄이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항공사가 탑승 고객수를 아무리 정확히 예측한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자리가 남게 마련입니다. 인터넷이 그 문제를 해결했습니다"(하퍼 부사장)

넷세이버 프로그램은 이미 연간 1억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려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AA는 인터넷시대의 기업이 어떻게 변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뉴욕= 유병연 기자 yoob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