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기름을 발라 잘 빗어 넘긴 시골아저씨 머리같다"

보성읍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멀리 고흥반도를 향해 잠시 달리다 만나는
고개 봇재.

이 곳을 넘어서면 또 다른 세상과 마주친다.

눈 앞을 가득 채우는 계단식 고랑의 끝없는 물결.

전망대인 "다향각"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그 모습이 한결 뚜렷하다.

한국 여인의 곡선미를 떠올리게 하는 고랑의 부드러운 선은 어느덧 절대
경지를 찾아 떠나는 구도자의 선으로 다가온다.

국내 최대의 차 밭이 펼쳐진 전남 보성.

면적만 1백만평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지난 30년대말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종자가 처음 뿌려진 보성 차 단지.

하지만 지난 세월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은 일본인들도 그 맛의 깊이에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의 차 밭을 자랑스레 키워 냈다.

남해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닷 바람과 낮게 깔린 자욱한 안개는 보성
차 특유의 향을 만들어낸다.

따낸 찻잎을 찌고 말리고 볶는 과정을 반복하는 아낙네들의 정성스런
손길도 그윽한 향기를 빚어낸다.

"하늘이 내려준 자연 조건과 보성 사람의 정성이 이곳을 녹향의 고장으로
만들었죠"

보성군 문화관광과 정동규 계장의 설명이 빈말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따뜻한 보성 차 한 모금으로도 충분하다.

이달 말이면 보성 차 밭은 신록의 진수를 보여준다.

곡우(4월 20일) 무렵 돋기 시작한 연 초록의 새순들이 눈부신 비탈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달말부터 다음달초까지가 땟깔이 제일 좋지. 구경오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구먼"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찻잎을 손질하던 촌로의 밝은 표정이 정겹다.

녹차는 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이름과 값이 달라진다.

곡우 전에 막 돋아난 새 잎으로 만든 것을 우전이라 하고 값도 가장 높게
친다.

올해는 지난 19일 무렵부터 따기 시작했다.

그후 보름 간격으로 작설, 중작, 대작을 5월말까지 따낸다.

6월 한달동안 다 자란 잎은 엽차로 쓴다.

보성군은 해마다 5월초에 다향제를 열고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25회째를 맞는 올해는 5월9~10일 이틀동안 보성군내 곳곳에서 행사를
갖는다.

다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다신제, 찻잎따기.차 만들기 경연, 차 아가씨
선발대회 등을 연다.

각종 녹차와 다구를 싸게 파는 녹차 장터도 운영하며 차밭 체험 투어도
계획하고 있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 들를만 하다.

보성 차밭을 떠나오는 길에는 어느덧 환한 녹색으로 물든 자신을 발견할수
있을 것이다.

< 보성=박해영 기자 bono@ >

[ 여행메모 ]

<>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광주~화순~능주~보성읍을 통과해 18번 국도를
타고 율포 쪽으로 가다가 봇재를 넘으면 다원이 시작된다.

기차는 서울역에서 보성까지 하루 1차례(오전 9시5분 출발, 오후 2시26분
도착.무궁화) 운행한다.

광주에서 보성까지는 8차례(무궁화 3, 통일 5회) 기차가 다닌다.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보성행 버스가 30분마다 출발하며 보성읍내에서
다원까지는 군내버스를 이용할수 있다.

30분 간격이며 다향각까지 15분정도 걸린다.

<> 다원 =대한다업(0694-852-8887), 동양다예(852-2255), 보성다업
(852-8410), 꽃동산다원(852-8283), 보성작설원(852-2278) 등이 있다.

차를 시음할수 있고 녹차에 관한 자세한 설명도 들을수 있다.

시중보다 싼 값에 차를 판매한다.

우전 3만5천원, 작설 1만7천원, 중작 1만원 내외.

<> 가볼만한 곳 =보성은 서편제의 고장이다.

보성읍 보성공원에는 박유전을 기리는 판소리 노래비가 있고 그의 제자인
정응민의 생가가 회천면에 있다.

서재필 기념공원도 가볼만 하다.

<> 숙박시설 =보성읍내에 10여개의 여관이 있다.

대한다업에서는 민박도 가능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