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4년간 소설을 쓴 일이 밤길의 선행자를 좇아가는 것과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의 삶도 어두운 밤에 눈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과
같지요. 내 발자국이 뒤에 오는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소설가 이청준(60)씨는 자신의 문학인생을 "밤길의 선행자 좇기"라는 말로
집약한다.

그는 종착점에 대한 정보나 믿음이 불확실한 때일수록 우리 삶의 노정엔 더
많은 "마음의 동행자"와 따뜻한 위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삶과 문학적 발자취를 한 권에 담은 미니전집 "오마니"(문학과의식)가
나왔다.

신작 단편 "오마니" "빛의 사슬"을 비롯 등단작 "퇴원", 문학자서전, 대담,
작가론, 화보 등을 묶은 미니전집이다.

이 책에는 전남 장흥 "참나무골"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여덟 군데나
떠돌아다니던 유년시절부터 8살때 홧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5남3녀였던
형제가 1남3녀로 줄어든 성장기의 아픔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그의 소설 "흰옷" "선생님의 밥그릇" 등에 등장하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8촌형님 이종남 선생님, 이열 교장선생님, 중학교 때의 강봉우 교장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고교 때 직접 선거로 학생회장이 됐지만 편가르기에 질려 정치혐오증을
갖게 됐다는 첫 고백도 담겨 있다.

그는 중3때부터 가정교사로 전전하며 굶기를 밥먹듯 했다.

대학 다닐 때는 밤마다 강의실 바닥에 숨어서 잤다.

서울대 독문과 4학년 때인 65년 "사상계" 신인상에 당선돼 작가로 데뷔한 뒤
장준하 사장의 권유로 1년반 동안 잡지사 일을 했지만 평생을 소설쓰는
일에만 진력해왔다.

그는 문학 자서전에서 "6.25때 동네 이웃에게 가족을 몰살당하고도 보복
하려는 마음 없이 염소 한마리를 끌고 산으로 들어가 젊은 생애를 마친
외종형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웃학교 공부를 하더라도 남 위에 올라앉을 생각말라"는 가르침이 그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스물여섯에 죽은 맏형의 책과 독서록에서도 문학적 자양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시골살이에서 체득한 고향과 자연의 마음이라고
회고했다.

태생적 시골살이 체질과 실패한 도회살이 체험.

이 두가지 요소를 바탕에 깔고 "양자 통합의 총체적 삶"을 이해하기 위한
"길찾기 과정"이 이청준 문학의 좌표인 셈이다.

그는 "순수문학이 설 자리를 자꾸 잃어가는 게 안타깝다"면서 "보이지
않는 동행자에게 작은 위안의 발자국 한 줄기라도 남길 수만 있다면
내 역할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