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어제 노사정위원회 탈퇴를 결의함으로써 노사불안이
노사위기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지하철노조의 전면
파업(19일)이 초읽기에 들어간 터여서 국민들의 불안은 증폭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다가는 4~5월 노동대란설이 그대로 현실화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나돌고 있다.

경총의 노사정위 탈퇴 결의는 최근 노사정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로 보아 예고됐었다고 해야 옳다. 지난 2월 민주노총이 합의사항 불이행
등을 이유로 노사정위를 탈퇴한데 이어 한국노총도 지난 9일 조건부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노사정위는 이미 기능을 상실해버린 상태였다. 이 와중에서
정부가 어떻게든 노동계를 노사정위에 복귀시키려고 무리하게 많은 당근을
제공한 것이 화근이 되어 사용자측의 불만을 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최근 정부는 노동계 달래기에만 급급, 사용자측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 면이 없지 않다. 특히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을 폐지하라는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키로 한 것은 노동법개정의 기본정신을 망각한 처사
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은 경영계가 복수노조허용 등 많은 양보를
하면서까지 관철시킨 사안이다. 이렇게 민감한 사안인데도 정부가 경영계를
배제한채 노동계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관련조항을 재개정키로 합의한 것은
분명히 경솔한 처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법정근로시간의 단축이나
노사정위의 표결 강제규정 도입 역시 재계의 의사를 철저히 무시한채 논의
되고 있다는 점에서 경솔하기는 마찬가지다.

경총의 탈퇴 결의로 노사정위는 출범 1년3개월여만에 파국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이번 기회에 노사정위의 위상과 역할을 재검토해봐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IMF관리체제와 함께 출범한 노사정위는 초기만 해도
대외신인도 제고에 적지않은 공헌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탈퇴와 복귀를
카드로 한 노동계의 "민원창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일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는 노사정위라는 모양새에 너무 신경을 쓰느라 정작 노동문제
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 않나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이다.

노동문제와 관련해 정부가 가장 신경을 써야 할 곳은 상급노동단체가
아니라 단위사업장이다. 해마다 임단협상철만 되면 상급단체들은 공동교섭
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세불리기 경쟁에 나서고 있지만 이는 하루빨리 고쳐
져야 할 좋지 않은 관행이다. 각 사업장의 특수성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급
단체들이 어떻게 합리적인 교섭을 벌일 수 있을 것이며 또 협상결과에 대해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노사정위가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제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정부가 이 기구의 존속에 너무 연연해 계속 무리수를 둔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클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