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정책을 믿었던게 잘못인가"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을 잊고 싶다"

윤병강 일성신약 회장은 은행 경영에 대한 꿈 하나로 한일은행(현 한빛은행)
지분 4%를 18년간이나 보유한 기업인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모든 꿈을 접고 주식을 팔기 시작했다.

그의 가슴엔 피눈물이 괸다.

정부의 은행 민영화정책에 따라 한일은행 주식을 인수한 것은 지난 81년.

"한일은행은 내은행"이라는 생각을 하루도 버리지 않았다.

은행주가 아무리 뜀박질을 해도 팔지 않았다.

언젠가는 은행경영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IMF위기가 터지고 은행자체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철희.장영자사건" "금융실명제파동" 등을 겪을 때처럼 어려움을 이겨내면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 새출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끝내 윤회장을 외면하고 말았다.

감자와 예금보험공사의 출자, 상업은행과의 합병등으로 4%에 이르는 지분이
형편없이 쪼그라들고 말았다.

70평생 일궈온 재산만 날라갔을 뿐 은행경영 참여라는 꿈은 더이상 소용이
없게 됐다.

조흥은행의 대주주였던 고홍명 빠이롯트 회장도 마찬가지다.

정부정책에 부응해 은행주를 인수했으나 윤회장과 비슷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은행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경영부실에 대해 대주주는 책임져야 한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말았다.

대주주라고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한번도 갖지 못하고서...

윤 회장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94년이 오늘날의 수치를 겪지 않아도 될
마지막 기회였다.

정부가 금융전업가 제도를 도입한 때다.

그 때 꿈을 접었으면 됐을 것을 은행민영화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 뒤 은행의 민영화도, 금융전업가 정책도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부는 부실은행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오히려 시중은행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국유화했다.

지분구조로 보면 81년 이전 상태로 돌아간 셈이다.

국유화된 은행은 언젠가는 다시 민영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은행자본금으로 넣은 국채의 만기가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피해자가 더이상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윤회장의 장탄식은
아직도 줄거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은행정책에 대한 무서운 채찍처럼 들렸다.

< 홍찬선 증권부 기자 hcs@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