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철(1840~1916)은 고종때 활약한 외교전문 관료다.

하산집에는 그가 1885년부터 청의 이홍장과 세차례 만나 외교협상을 벌인
내용이 상세하게 실려있다.

그 가운데 양국이 1721년에 세운 "백두산 석비" 내용을 설명하며 주저하지
않고 국경이 잘못됐다는 것을 지적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두만강과 토문강 사이의 지대는 공백지대로 남겨 양국민이 경작토록
합의했는데 토문강을 두만강으로 잘못 알고 있는 청인들이 두만강을 넘어간
조선인을 불법으로 단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당당하게 시정을 촉구했다.

외세의 개입으로 정국이 하루밤 사이에 바뀌는 혼란속에서도 당시 외교관들
은 국가의 주권과 국익을 위해서는 이처럼 당당하게 협상에 임했다.

그런데 요즘은 한.일 어업협상에서 드러났듯 어딘지 좀 달라 보인다.

한국과 프랑스간 외교현안중 하나로 5년 반이나 끌어온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협상이 이달말 서울서 열릴 예정인 한상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과
자크 살로 프랑스 감사원 최고위원의 화합을 계기로 빠른 진전을 보일 것
같다.

지난해 양국 대통령의 만남에서 약속된 화합이다.

두 대표의 회합이 알려지자 그동안 반환운동을 주도해 온 서울대 규장각을
비롯한 문화재관현 단체들이 최근 일제히 정치적 협상타결을 반대하고
나섰다.

어떤 경우든 프랑스가 주장해 온 비슷한 가치를 지닌 우리문화재를 내주고
영구임대방식으로 약탈문화재를 돌려받는 "등가교환형식"의 반환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우리의 반환요구를 "서울의 악착스러움"이라던 프랑스 언론의 논평은 자국을
옹호하는 편견일 뿐이다.

외규장각문서는 그리스의 비너스상처럼 인류가 공유해야 할 완상품이 아닌
조선왕조의 국가문서다.

자칫 잘못하면 1백30년전 약탈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꼴이 된다.

반환거부는 엄연히 국제법에도 어긋난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이번 협상이 문화주권을 지키는 우리외교의 승리로
끝났으면 한다.

하지만 한국대표가 당위와 실정법의 조화만 되풀이 강조하는 것을 보면 그
기류가 또 심상치 않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