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재평가로 늘어난 자산을 부채비율 감축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부와 대기업간 줄다리기는 정부의 일방적 판정승으로 끝났다.

대기업들은 이제 재무구조개선 계획을 새로 만들고 자산재평가로 부채비율을
낮춘만큼 자산을 팔아 메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 규모는 기업에 따라 많게는 수조원에 이른다.

자산재평가 인정 여부를 놓고 벌어진 정부와 기업간 논쟁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정부가 정해놓은 룰을 스스로 어기는 모순된 행동을 개혁이라는 명분아래
거리낌없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자산재평가는 말 그대로 기업이 갖고 있는 부동산이나 건물 공장 기계 등의
자산을 현재의 시장가격에 맞게 장부가격을 고치는(재평가하는) 것이다.

물가 상승폭이 클 경우 자산의 장부가와 실제가격간 격차가 커지는데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2000년말까지 한시적으로 도입한 제도다.

실제보다 낮게 평가돼 있는 자산가격을 현실화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자산재평가에 의한 부채비율 축소는 장부상 숫자만
바꾼 것"이라는 정부 입장은 무리가 있다.

가령 A라는 기업이 1백원의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하자.

10년뒤 물가 상승으로 A기업의 자산가치는 1천원으로 높아졌다.

A기업이 이 자산을 판다면 10년전 가격인 1백원이 아니라 현재의 가격인
1천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부채비율 측정시 기준이 되는 자산으론 1백원이 돼야 할까 1천원이
돼야 할까.

상식적으로 볼때 당연히 1천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입장은 자산가치를 1백원으로 밖에 인정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부채비율 산정과 관련해선 자산재평가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논리적
모순을 지닌다.

정책이나 법률의 기본요건인 "일관성"을 스스로 저버린 셈이다.

이런 모순의 희생자는 기업과 그 기업에 생활을 의지하고 있는 직장인들이다

미 클린턴 대통령과 서머스 재무부 부장관은 내정간섭이라는 비판에 아랑곳
없이 직접 한국 5대기업의 개혁을 언급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사사건건 미국업체를 붙잡고 늘어지는 한국의 5대기업이
그만큼 눈엣가시 같은 존재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번 자산재평가 논쟁의 결말이 미국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 강현철 산업1부 기자 hcka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