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은 죄다 두드려 댔다.

악기란 꼬리표가 붙은 것은 물론 종이나 물에 이르기까지.

두드리는 물건을 보듬어 안아보거나 쓸어 보고 맛도 봤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소리의 떨림이 그냥 좋았다.

소리에 지쳐 탈진해 쓰러지는 일도 허다했다.

대신 침묵속에 갇혀 있던 "소리의 영혼"은 형형색색으로 도드라졌고 이름
모를 물체들은 악기로서의 새생명을 얻었다.

타악연주자 최소리(33).

9살때부터 지금까지 24년을 그렇게 뭔가를 두드리며 살았다.

"가진 재주가 그것 밖에 없어서"라지만 청력을 잃어가면서까지 소리에
집착해 온데는 이유가 있다.

"소리에는 모든게 함축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처음과 끝, 인간의 삶과
죽음에 내포된 의미까지도 담겨 있지요. 이를 찾아 풀고 다시 엮어 세상에
대한 저의 생각을 형상화하는게 두드림의 작업이지요"

소리에 대한 그의 생각과 목표는 뚜렷하다.

흘깃보고 묻어둘수 없는 우리의 역사적 한을 드러내 풀어주는 것이 첫째다.

97년 낸 음반 "두들림I"에 실린 "히로시마 폭격", 지난해 낸 "5월의 꽃"에
담긴 메시지가 그렇다.

이는 소리를 통한 후천개벽 의지와도 맞닿아 있다.

"행동 대신 소리로 ''운동''을 하는 겁니다. 소리를 통해 소리없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작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환경쪽에도 해야할 일이 많지요"

그 다음이 "음의 순수성"을 찾는 것이다.

연주자 조차 이해못하는 무의미한 "떠벌림"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만의
이미지를 떠올릴수 있는 "울림"에 대한 탐구다.

여러대의 기타를 눕혀 놓고 장고채로 두드려 낸 소리로 만든 "비단길"
(두들림I)이 대표적 예다.

베갯모의 화려하고 단정한 장식의 이미지를 그린게 그렇다.

중학교를 마친 후 4~5년, 잘 나가던 록그룹 "백두산"을 뛰쳐 나와 또
몇년을 깊은 산속에 파묻혀 창조해낸 "소리묶음"들이다.

그는 이 모든 소리탐구 과정과 결실을 첫 단독 콘서트(02-548-4480)에서
펼칠 예정이다.

16일~18일 네차례 호암아트홀 무대에서다.

색소폰과 피아노, 구음, 발레, 퍼포먼스 등 20여명의 달인들이 어울려
풀어낸다.

"물건너 가서 돈도 벌어와야죠. 오는 8월 일본 하마다시에서 열리는 하나비
축제에서 연주한 뒤 유럽시장의 문도 두드릴 계획입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