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망설임의 가치 .. 최정례 <시인>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어린 날 맛있는 사탕과자들 앞에서 망설였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떤 색깔과 향기의 사탕이 가장 맛있을까를 상상하며 선택의 결단을 뒤로
미루고 망설였던 순간은 행복한 괴로움의 순간이었다.
망설이는 순간은 결단 후의 시간보다 풍요로운 시간이다.
무엇을 결단하기 전에 선택할 길을 한번씩 마음 속에서 그려보는 것은
세계와 내가 만나 닿는 기회를 넓히는 길이다.
이 일도 해야 하지만 저 일도 하고 싶을 때, 한 여성이 아름답지만 다른
여성도 사랑스러울 때, 공부도 해야 하지만 놀고도 싶을 때, 어떤 일을 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망설이며, 망설일 수밖에 없을 때,
그 때 우리의 감성은 섬세해진다.
창조적 정신에서 비롯한 아이디어는 바로 그 순간에 튀는 게 아닐까.
현대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 준 기계화 자동화는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었지만
덕분에 인간의 정신까지도 기계적이고 거칠게 만들어 버렸다.
예를 들어 자동문은 신중함과 예절을 잃어버리게 했으며 자동차 운전은
망설임의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운전을 하다가 갈림길을 만났을 때 망설이거나 머뭇거리다가는 사고를 내게
되며 자동문을 두손으로 공손히 닫았다가는 다치거나 웃음거리가 되어야
한다.
컴퓨터의 커서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은 뒤쳐지는 사람이며 신호등 앞에서의
늦은 출발은 클랙션의 경고와 멸시의 눈총을 받아야만 한다.
망설이지 말고 결단해야 하며 후회하지 말고 전진하라 하는 것, 그러면서
창조적인 행동과 창조적인 사고를 해보라고 밀어붙이는 것, 이런 압박
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기회는 차츰 잃기만 해야 할까?
풀꽃이 난만한 구불구불한 변두리 길이 어느 새 사라지고 쭉 뻗은 도로를
내는 걸 볼 때마다 빨리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망설이며 헤매야 할
기회를 빼앗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0일자 ).
것이다.
어떤 색깔과 향기의 사탕이 가장 맛있을까를 상상하며 선택의 결단을 뒤로
미루고 망설였던 순간은 행복한 괴로움의 순간이었다.
망설이는 순간은 결단 후의 시간보다 풍요로운 시간이다.
무엇을 결단하기 전에 선택할 길을 한번씩 마음 속에서 그려보는 것은
세계와 내가 만나 닿는 기회를 넓히는 길이다.
이 일도 해야 하지만 저 일도 하고 싶을 때, 한 여성이 아름답지만 다른
여성도 사랑스러울 때, 공부도 해야 하지만 놀고도 싶을 때, 어떤 일을 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망설이며, 망설일 수밖에 없을 때,
그 때 우리의 감성은 섬세해진다.
창조적 정신에서 비롯한 아이디어는 바로 그 순간에 튀는 게 아닐까.
현대 문명의 발달이 가져다 준 기계화 자동화는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었지만
덕분에 인간의 정신까지도 기계적이고 거칠게 만들어 버렸다.
예를 들어 자동문은 신중함과 예절을 잃어버리게 했으며 자동차 운전은
망설임의 기회를 앗아가 버렸다.
운전을 하다가 갈림길을 만났을 때 망설이거나 머뭇거리다가는 사고를 내게
되며 자동문을 두손으로 공손히 닫았다가는 다치거나 웃음거리가 되어야
한다.
컴퓨터의 커서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은 뒤쳐지는 사람이며 신호등 앞에서의
늦은 출발은 클랙션의 경고와 멸시의 눈총을 받아야만 한다.
망설이지 말고 결단해야 하며 후회하지 말고 전진하라 하는 것, 그러면서
창조적인 행동과 창조적인 사고를 해보라고 밀어붙이는 것, 이런 압박
으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기회는 차츰 잃기만 해야 할까?
풀꽃이 난만한 구불구불한 변두리 길이 어느 새 사라지고 쭉 뻗은 도로를
내는 걸 볼 때마다 빨리 달려가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망설이며 헤매야 할
기회를 빼앗기는 것 같아 씁쓸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