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동안 잊을만 하면 되풀이 되던 고액권발행 논쟁이 결국은
이번에도 유보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가
지난 16일 공청회를 열어 고액권을 발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냄에 따라 어느
때보다도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는 듯 했지만 18일 재정경제부측이 고액권
발행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당분간 추진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올들어 정치권을 중심으로 다시 고개를 든 고액권발행 주장에 대해 최근까
지도 애매한 태도를 보이던 재경부가 왜 갑자기 입장을 바꿔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액권발행을 유보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액권을 발행하지 않는 쪽이 우리경제를 위해 더 바람직
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화로 하루가 다르게 경제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현재상황에서는 더욱 고액권발행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동안 고액권발행을 찬성하는 쪽은 경제규모가 엄청나게 커져 대금지불이
불편하며 10만원짜리 자기앞수표를 발행하고 보관하는데 해마다 8천억원이
넘는 비용이 드는데다 수표위조가 쉽기 때문에 확인절차가 복잡하다는 점
등을 강조해왔다. 한마디로 거래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 고액권발행 주장의
핵심이다. 하지만 단순히 비용절약 때문이라면 굳이 10만원권을 발행하지
않아도 신용카드사용 등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에 비해 고액권을 발행하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하고 부정부패
및 음성거래를 조장할 염려가 있다는 반대쪽의 주장에는 마땅한 대안이 없는
실정이다. 물론 찬성쪽의 지적대로 지금처럼 경기가 나쁘면 인플레이션 걱정
보다는 경기회복 촉진에 대한 기대가 더 클수도 있다. 또한 고액권 발행을
미룬다고 우리사회의 부정부패 및 음성거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고액권발행이 우리경제의 당면과제인 투명성제고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투명성제고는 외국인 투자유치 등을 통한 경제회복촉진 및 경쟁력강화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다. 그리고
현금사용을 줄이고 신용카드 결제를 확대하는 것은 통화정책의 효율증진,
과세형평의 제고 등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물론 신용사회를 정착시키는
제반 제도가 정비된 뒤에는 필요하다면 고액권발행을 얼마든지 고려해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일의 순서는 당연히 제도정비가 먼저이며 고액권발행은
그 다음 일이 돼야 한다.

따라서 정치권은 고액권발행 주장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을 받지않기 위해
서도 시민단체들의 지적대로 유보된 금융소득종합과세 재개를 통한 금융실명
제의 전면실시,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는 자금세탁법 및 부패방지법의 제정부
터 먼저 서둘러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