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을 앞두고 세계 종교계가 엄청난 변화를 겪고있다.

서로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이 만나는 것은 다반사였고 신흥종교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최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란의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을 만난 것은
한 밀레니엄기의 종지부를 찍는 일대 사건이었다.

9백여년동안 갈등을 겪어온 이슬람교문명과 그리스도교문명이 화해와 협력의
길로 가는 계기로 볼 수 있다는 게 종교학자들의 평가다.

국내 종교계도 지난해부터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주요 종교들이 대부분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했다.

불교 조계종은 법난을 겪는 우여곡절 끝에 고산 총무원장 체제를 탄생시켰고
천주교도 정진석주교를 새 서울대교구장으로 선출했다.

성균관도 3년간 갈등을 청산하고 최창규원장이 취임했다.

마치 종교계가 약속이나 한 것 처럼 새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이들 종교의 새 지도자가 취임하면서 한결같이 내세운 화두는 화해와 협력
이다.

종교내부간,또 다른 종교간 갈등을 해소하고 민족정서에 맞는 종교 토착화를
이루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마치 변화의 시대를 선도하는 징표처럼 보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1층에서 열린 한국종교
지도자협의회의는 기대에 못미친 것같아 아쉬움이 있다.

이 회의는 국내 대표적인 종교의 지도자들이 만나 상호협력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자리인 만큼 종교계 내부뿐아니라 일반인들도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 협의회의 주빈인 천주교와 조계종 지도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천주교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이날 참석하지 않았으나 원래부터 협의회
활동에 소극적이었다.

조계종도 총무원장이 워낙 바빠 이 협의회에 신경을 쓸 계제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두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이날 행사는 반쪽 행사가 되고
말았다.

물론 이 협의회의 활성화 자체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종교상생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다.

아직은 다른 종교를 선뜻 인정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미국의 저명한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종교간 가치의 충돌이 세계적인 상황
이지만 서로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21세기가 종교가 공존하는 시대라면 국내 종교계가 그동안의 관행은 깨고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오춘호 문화부 기자 ohc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