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강성 노조인 기아자동차 노조가 사실상 무분규 선언을 했다는 것은
노동단체들의 장외투쟁으로 조성된 노사관계의 위기국면에 한줄기 숨통을
터주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수 없다.

우리가 기아의 노사화합안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고용보장 및
미지급 임금문제 등 쟁점현안의 타결 외에 "노조가 산업평화와 회사의 조기
정상화에 앞장서며 무분규 정신으로 새로운 노사관행 정착을 위한 노사화합을
선언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상 무분규 선언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기아노조는 지난 2월 자동차업계에서는 제일 먼저 파업을 벌여 올 노사관계
전망을 어둡게 해왔을 뿐더러 최근에는 "3~4월 노동대란"설과 관련, 태풍의
눈으로 주목받아왔다. 따라서 기아노조의 무분규 선언은 앞으로 노동단체들의
강경투쟁방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며 자동차업계는 물론 국내
산업계 전반의 노사관계 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당장 현대자동차 노조가 파업찬반투표를 철회하고 파업대신 새로운 지도부
선출을 서두르기로 한 것도 기아노사화합의 영향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와 기아노조는 통합하기로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에 새로운
공룡노조의 노선과 관련해서도 이같은 변화는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고
하겠다. 또한 통합을 앞두고 있는 아시아자동차와 기아자동차판매 등 계열사
노조들도 기아자동차노사의 합의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니 이번 기아
노사의 합의는 그동안 기아에 쏟아졌던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걷어내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아의 무분규 선언이 최근 단위사업장의 임금협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노사협력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임금협상을 타결한 1백80개 사업장 중 1백35곳에서 임금을
동결하거나 하향조정했다. 그 결과 평균 임금인상률은 마이너스 1.3%를 기록,
IMF구제금융 직후였던 지난해 동기의 인상률 마이너스 0.3%보다도 낮았다.
기업 규모별로는 대기업일수록 임금인하폭이 크다. 올들어 경기회복 움직임에
편승, 임금인상요구가 거셀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임금이 오히려 깎이고 있다
는 것은 의외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물론 지금과 같은 마이너스 인상률이 "춘투"기간에까지 이어질지 의문이다.
그러나 상급 노동단체들이 5.5~7.7%의 임금인상안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위사업장 노조들이 경영계가 내세운 동결이나 삭감을 받아들이고 있다
는 것은 일찍이 볼수 없었던 성숙된 모습이다.

우리는 기아자동차를 비롯한 단위사업장의 노사화합 분위기가 빠른 시일
내에 보다 많은 기업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장외 강경투쟁을 선언한 상급
노동단체들도 이같은 산업현장의 분위기를 올바로 읽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