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 혼선을 지적하자면 요즘 국제사회에선 단연 일본이 꼽힌다.

한두달 사이에 중요한 거시정책이 완전히 뒤집히는가 하면 정반대의 주장이
동시에 나와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때문에 업계에서 불만과 원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정부의 국채매입 여부.

얼마전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은 연기금을 동원해 국채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이통에 금리가 사실상 제로(0%)로 떨어져 있다.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국채를 사들이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하던 그였다.

환율정책도 마찬가지다.

일본정부는 작년말부터 "강한 엔화"를 지지한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중순 갑자기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대장성차관은 "엔화
약세유도 방침"을 천명했다.

1개월반만에 환율정책 방향이 1백80도 돌아선 것이다.

통화공급이나 부실은행 처리를 둘러싼 혼선도 그렇다.

오부치 게이조 일본총리는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통화공급 확대를
주장한다.

이에반해 중앙은행측은 인플레를 촉발시킨다며 통화량확대에 반대했다.

정치권 압력에 눌려 중앙은행이 최근 돈을 풀고있지만 언제 기조가 뒤집힐
지 모르는 상황이다.

중앙은행총재 자신이 "앞으로도 돈이 계속 풀릴지 확신할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부실은행에 대한 지원을 놓고는 아예 상반된 주장이 맞서있다.

한쪽에선 부실은행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 지원규모를 대폭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부실은행은 시장기능에 따라 망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을 지원
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입씨름하는 사이에 일본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안은 높아만 가고
있다.

결국 이 상황에서 골병이 드는 것은 기업들일 수밖에 없다.

소니 그룹의 한 관계자는 "경제정책이 어디로 흐를지 도무지 알수 없어
중장기계획을 세우지 못할 지경"이라고 불만을 터뜨린다.

따지고 보면 일본경제가 개혁을 못하고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든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정부"에 있다는 데 달리 할말이 없을 게다.

관료들이 수많은 규제를 틀어쥐고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제때 적절한
대안을 내놓지 못해 그 지경이 됐다는 지적이다.

남의 얘기만도 아니다.

행정규제와 관료들의 의식수준으로 치자면 한국이 일본 못지않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국민연금 확대와 기업 빅딜 등을 추진하면서 보여준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일본을 연상시키고도 남는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