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시 "남해 금산"의 끝부분이다.

불과 7행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에 연거푸 등장하는 절창의 산.

남으로 뻗어내리던 지리산맥이 마지막 매듭을 뭉쳐 한려수도 한 가운데에
불쑥 뽑아 올린 옹이가 솟아 있다.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닷물"이 맞닿은 일점선도, 그곳에 "비단 산"으로
불리는 금산이 있다.

남해 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산의 풍광도 유려하지만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경치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산 아래 완만한 백사장을 펼친 상주해수욕장이 넉넉한 품으로 미소를
짓고 맑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비경.

쪽빛 물결이 넘실대는 청정해역으로 조는 듯 흔들리며 지나가는 고깃배도
한 폭의 그림같다.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씨가 "따뜻한 남쪽 나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미조항도 이곳에서 가깝다.

금산은 해발 6백81m밖에 안되는 높이지만 "비단을 두른 산"이라는 이름
그대로 기묘한 "38경"을 자랑하며 명산의 자태를 뽐낸다.

신라 원효대사에 의해 보광산으로 불리다가 이성계의 조선 건국 뒤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가 이곳 보리암에서 백일기도 끝에 왕업을 이루고 산신과의 약속대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으려 하자 신하들이 "비단금자로 이름을 지어
세세천년 누리게 하자"고 건의해 금산이 됐다.

보리암 아래에는 지금도 이성계가 기도했던 자리가 남아 있다.

산의 명치께에 닿으면 울창한 숲이 옹골차게 버티고 서서 세속의 묵은
옷을 벗겨낸다.

계곡물에 목을 축이고 한참을 오르다 보면 길섶에서 산꿩이 후두둑
날아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참선하던 나무와 바위들이 죽비소리에 놀라 잠을 깨는 듯하다.

바위 높이가 80m나 되는 상사암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배어 있다.

양반집 처녀를 짝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머슴이 뱀으로 변해 그녀의
몸에 감겼다가 이 바위에서 여자의 해원기도로 한을 풀고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는 슬픈 순애보.

이 때문에 상사암은 연인들이 꼭 들르는 필수 코스다.

상사암에서 내려다보면 서포 김만중이 유배와 어머니를 위해 구운몽을
지었다는 노도섬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에서 맞는 일출은 남도 제일의 절경으로 꼽힌다.

자욱한 새벽 안개가 서서히 몸을 풀면 여명에 물든 바다가 풍만한 옆구리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아침 7시.

바다보다 하늘이 먼저 얼굴을 붉힌다.

마침내 발갛게 달궈진 해가 다도해의 수평선 위로 머리를 내밀면 온
남해바다는 뜨겁게 요동친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신열에 들뜬 산모처럼 금산도 몸을 떤다.

등산로는 상주해수욕장을 등지고 금산입구에서 직선 코스로 오르는
길과 뒤쪽 복곡 저수지에서 산의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두갈래 길이 있다.

보통은 남해읍에서 미조행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가다 "걸어서 금산까지"
라는 멋진 이름의 가게 앞에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정상까지 넉넉잡아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지 않으면 복곡 저수지까지 셔틀버스나 택시로 가서 보리암행
미니버스(왕복 2천원)를 이용한다.

산의 뒤통수 부분에 있는 간이 주차장에서 30분쯤 걸어 올라가면 망대에
닿는다.

<> 가는 길 <>

<>버스=서울~남해 직행버스 하루 4회(5시간30분), 부산~남해 28회
(2시간30분), 진주~남해 33회(1시간)

<>승용차=경부고속도로 회덕~호남고속도로~남해고속도로 노량~남해대교~
남해읍

<>비행기=사천공항~진교~남해

<> 특산물 ="남해3자"로 꼽히는 유자 치자 비자와 건멸치 멸치액젓이
유명하다.

특히 유자차 유자술은 정평이 나있다.

최근엔 마늘이 각광받고 있다.

겨울에도 보리밭처럼 펼쳐진 들판에 파란 마늘순이 너울진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