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고 실제시장 상황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변화의 핵심은 "소유"에서 "사용"으로 그 개념이 옮겨가고 있는 것.

제일 큰 변화는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나타난다.

은행빚을 얻더라도 큰 평수의 아파트만 사두기만 하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는다는 "부동산 신화"가 깨졌다.

앉아서 돈을 벌던 "중산층"들이 집값 폭락으로 시세차익은커녕 대출금
이자부담 등 엄청나게 불어난 빚더미에 시달리고 있다.

재산증식의 효자노릇을 하던 부동산이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전세시장에서도 전세값이 하락하자 차액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세입자
에게 그 차액에 대한 이자를 지불하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웬만한 상가마다 붙어있던 권리금은 옛말같이 돼버렸다.

빈 점포가 급증하자 신촌 등 서울 요지의 상권에서도 임대보증금이 없는
"일세" 점포가 등장했다.

기업의 시각도 달라졌다.

상당수의 기업들은 그동안 영업활동보다 부동산을 통해 "덩치"를 키워왔다.

설사 영업이익은 못낸다해도 부동산값이 가파르게 상승, 기업의 외양을
과시하는 데 전혀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부동산값이 담보가치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정은 1백80도 달라졌다.

부동산 보유가 많을수록 비례해서 곱사등이 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부동산매물을 쏟아내고 있지만 살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한때 부동산 귀재라고 불렸던 거평 나산그룹까지도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현재 기업매물로 나와 있는 물량만도 50조원어치에 이른다"(김정렬
대한부동산경제연구소장)는 게 부동산업계의 추산이다.

"팔리면 살고 안팔리면 죽는" 부동산 매각에 목을 건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는게 오늘날 기업의 현실이다.

시장변화에 따라 건설업체들의 영업전략도 변하고 있다.

과거 아파트건설은 현금을 동원하는 최상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분양=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기왕 사둔 땅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분양을 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수요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분양가할인 대출금알선 경품제공 등의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위주의 시장이 열리고 있는 셈이다.

계약금을 대폭 줄이거나 무이자로 융자해 주는 것은 "예삿일"이 됐다.

입주시점때 계약자가 해약을 원할 경우 불입금액 전액을 이자까지 붙여
환불해 주는 조건도 나오고 있다.

보험설계사나 자동차 영업사원처럼 수요자를 찾아다니며 미분양 아파트를
판매하는 "아파트 어드바이저"란 직종도 등장했다.

이런 과정속에서 기업의 경영전략이 변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단기적으로 파격적인 조건을 통해 미분양을 해소하며 장기적으로 주택비중
을 낮추고 교량 도로 등 공사비가 제때 나오는 관급공사쪽으로 사업구조를
바꾸는 길밖에 없다"(원인기 성원건설 부사장)는 설명이다.

수십년을 고수해온 정부정책의 기본틀 역시 새로 짜여지고 있다.

그동안 부동산정책은 투기억제에만 초점이 맞춰져왔다.

토지공개념제도 등이 단적인 예.그러나 이젠 규제가 거의 없어졌다.

외국인투자자유화 분양가자율화 미등기전매허용 등은 과거엔 엄두도 못낼
"혁명적인" 정책들이다.

건교부 관리들도 "자산디플레이션을 막기위해 투기라도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공공연히 언급할 정도다.

부동산 시장환경변화로 정책입안자들의 철학이 이처럼 바뀐 것이다.

앞으로의 정책이 경기부양을 위해 실수요자들의 매매활성화에 초점을 맞출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시장과 정책의 변화는 부동산투자의 개념도 바꿔놓았다.

부동산을 사서 "원금을 부풀리는" 투기에서 "수익률을 높이는" 투자의
형태다.

다시 팔 것을 조건으로 부동산을 사서 임대료만 챙기는 "세일앤드리스백
(Sale & Lease Back)"은 대표적이다.

부동산 가치산정도 "비슷한 규모인 옆건물이 5억원이니 내건물도 5억원"
이라는 식의 거래사례비교법에서 수익환원법으로 바뀌고 있다.

수익환원법은 임대수입과 같은 현금흐름에 기초해 가격을 결정하는 것.

시장개방으로 국내부동산을 매입하려는 외국인들이 바로 이런 잣대로
부동산을 고르고 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부동산 투자기법이 필요하다"
(김화균 KCS부동산컨설팅 대표)는 얘기다.

부동산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인식변화와 부동산시장개방은 기존의 부동산
개념을 일순간에 바꾸는 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 김태철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