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자연 그리고 편안함.

작년 한해 우리 국민의 옷차림은 이 세단어로 대변된다.

IMF한파는 사람들에게 최첨단 유행보다는 가족 모두가 입을 수 있는 옷,
자연을 닮은 색상, 활동하기 편한 패션을 뜨게했다.

이것은 90년대 중반이후 패션계를 주도했던 영국풍 모즈룩(mods look)이나
펑크풍 등 다소 과격한(?) 트렌드와는 상당히 대조적인 흐름이다.

패션전문가들은 "고단해진 삶을 패션에서나마 위로받으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지오다노 티 등 실용성과 함께 중저가의 가격을 내세운 브랜드들이
지난해 빅히트를 쳤다.

올해도 이들과 비슷한 모양새의 상품이 패션매장을 지배하고 있다.

때문에 컴포터블(comfortable)캐주얼 또는 이지(easy)캐주얼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일부 20대 패션리더들 사이에는 들쭉날쭉한 치마길이에 앞뒤가 뒤바뀐
것같은 "아방가르드 룩"이 유행했지만 역시 그 밑바탕에는 입기 편해야
한다는 정신이 깔려 있다.

남성복도 마찬가지다.

몇년을 입어도 싫증나지 않는 클래식 스타일이 다시 돌아왔다.

또 고가와 저가로 양분되는 소비양극화가 패션에서도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10만원대 청바지를 사기보다는 같은 값으로 여러 벌을 선택했다.

옹골진 TBJ 잠뱅이와 같은 중저가 진이 탄생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중고가를 표방했던 브랜드들은 자체내에서 고가상품과 저가상품을 나눠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재킷과 바지는 10만원대 이상, 대신 니트 블라우스는 3만원대"처럼
상품별로 가격차이를 크게 둔 것이다.

한편 20만원대 이상의 수입 청바지를 입던 소비자들은 더욱더 비싸고 유명한
상품을 원했다.

관계자들은 그 증거로 고가 명품 브랜드의 작년 매출이 97년 대비 10%이상
늘어난 사실을 들었다.

고가 수입품시장의 이런 활황은 불가리와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을 속속
국내 시장에 끌어들이기도 했다.

패션전문가들은 "작년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옷을 통해 부를 과시하던 거품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며 올해도 고가 고급시장의 활황과 함께 대다수 서민들
에게는 값싸고 실용적인 패션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 내다봤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