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와 후진양성을 위하여"

지난 17일 중도퇴임이 확정된 라응찬 신한은행장의 얘기다.

지난 11일 사의를 표명한 홍세표 외환은행장도 똑같은 이유를 댔다.

"젊고 유능한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서"라고.

사실 이들만큼 오랫동안 은행임원으로 재직해온 사람도 드물다.

두 사람은 지난 82년 나란히 이사가 됐다.

라 행장은 지난 91년, 홍 행장은 지난 93년 각각 은행장으로 선임됐다.

라 행장은 최초의 3연임행장으로 무려 8년동안이나 은행장자리를 지켜왔다.

홍 행장도 6년동안 한미은행과 외환은행의 행장을 지냈다.

그런만큼 두 사람의 중도퇴진결정은 금융계 세대교체의 상징으로 꼽힐
만하다.

물론 두 사람의 퇴진배경은 약간 다르다.

맘먹기에 따라선 4연임도 가능했던 라 행장은 본인의 명예퇴진의사가 워낙
강했다고 한다.

대주주와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물러날 때''라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홍 행장의 경우엔 ''자의반 타의반 퇴진''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초임임기를 1년6개월이나 남겨 놓은데다 대주주인 독일 코메르츠은행도
임기채우기를 원했다는 점을 감안할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두 사람 다 감독당국의 ''은행장 세대교체의지''에 직간접적으로
영향 받았음은 분명하다.

지난 12일 열린 한미은행 주주총회에서 미셀리언 부행장은 3연임에 "성공"
했다.

한미은행이 비록 5%의 배당을 실시하는 등 우량은행의 면모를 과시했다고는
하지만 같은날 3명의 임원이 임기도 못채우고 물러난 것과 비교하면 이채로운
일이다.

대주주인 뱅크아메리카(BA)가 그를 밀지 않았거나, 그가 한국인이었더라면
십중팔구는 낙마했을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입방아다.

은행경영진이 경영실적에 따라 책임을 지는건 당연하다.

경영실적이 나쁠 경우 임기에 관계없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풍토가 정착
돼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돼야 한다.

경영실적이 좋을 경우 3연임이 아니라, 외국처럼 10년 혹은 20년동안 장기
집권하는 은행장을 용인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국내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은행장들이 줄줄이
물러났다.

지난해에도 대부분 은행장들이 금융부실의 허물을 쓰고 옷을 벗어야 했다.

라 행장과 홍 행장의 중도퇴진 결정으로 정부가 의도한 금융계의 세대교체는
완성됐다.

이를 계기로 오로지 경영실적에 의해서만 은행장의 진퇴가 결정되는 관행이
정착될지 두고볼 일이다.

< 하영춘 경제부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