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청문회에서 드러난 외환위기 원인 ]

<> 환율정책 실패 -> 고평가된 환율 유지하기 위해 외환보유고 소진
<> 정경 유착 -> 정태수 전 한보 총회장 대선자금 제공 증언
<> 기아사태 처리지연 ->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도공포증과 "삼성음모론''
등으로
<> 외환위기 늑장대응 -> 보고채널 이상, 국제통화기금(IMF)행 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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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제청문회에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추락시켜 외환위기로까지
몰고간 근본원인이 정경유착이었다는 것을 사실로 확인했다.

이와관련,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1백50억원의 비자금을 제공했다는 정태수
전한보그룹총회장의 증언을 확보한 것은 돋보이는 대목이다.

정 전총회장은 "지난 92년 12월께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김 전대통령에게
1백억원을 전달했고 당시 김명윤 민자당 고문의 서빙고동 자택에서 수차례에
걸쳐 50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감한 대선자금 문제가 쟁점화 될 경우 여야 모두에게 부담이 될
것이란 판단 때문인지 이 문제는 더이상 증폭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 전총회장의 증언으로 한보측이 엄청난 외화자금 대출 등 금융권
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지원을 받은 것은 정치권의 비호가 뒷받침되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이와함께 외환위기가 가시화된 지난 97년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 김인호
청와대 경제수석, 이경식 한은총재 등 경제팀이 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
하지 못하고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도 하지 않는 등 정책혼선이 있었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러나 특위위원들이 대기업들의 체질이 약화된 원인, 환율 등 외환정책의
문제점 등 외환위기의 근본적 원인에 접근하지 못하고 당시 경제팀의 실책을
찾는데만 주력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죄인찾기"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교훈삼아 향후 대비책을 마련하는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청문회에서는 또 단자사가 종금사로 무더기 전환된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관리감독 소홀 등을 비롯해 외환보유고 관리 및 금융감독 체계의
부실 등이 증인들의 증언이나 의원들의 질의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와함께 한보가 노무비를 과다계상해 총 7천3백32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했고 삼성자동차 진출과정에서 정치논리가 개입했다는 증언도 확보됐다.

기아사태와 관련해서는 김영삼 전대통령이 강경식 전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부도를 내지 말라고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또 삼성자동차 허용과 관련된 4박스 분량의 서류가 파기된 사실도 드러났다.

반면 청문회에서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도 많다.

우선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정책을 다룬 청문회에서 쟁점이 됐던 임창열
전경제부총리의 "IMF행" 인지 여부도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려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임 전부총리는 지난 97년 11월 19일 부총리 취임시점에 "IMF행"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강경식 전부총리는 임 전부총리가 "IMF행"을 알았을 것이라고 진술
했다.

김인호 전청와대경제수석은 자신이 알려줬다고 증언했다.

또 김영섭 전청와대경제수석도 "김영삼 전대통령이 임 전부총리에게
"IMF행"을 포함해 인수인계를 잘 받아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과 관련, 정보통신부는 기관보고에서 "이석채
전장관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줬다"고 밝혔으나 누구의 지시에 의해 특혜가
이뤄졌는지, 배후가 있었는지 등은 미제로 남아 있다.

종금사 인.허가 문제도 정.관계 인사에 대한 로비 의혹이 도마위에 올랐지만
증인들은 "미리 공표한 객관적 기준에 맞춰 종금사로 전환을 허가했다"고
한목소리로 진술, 의혹은 풀리지 않았다.

한보사건과 관련, 제일은행과 산업은행의 대출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김현철씨 등 주요 증인들이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이상 진전은
없었다.

< 김남국 기자 nk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