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전 5개년 계획인 "비전 2003"을 만든 직접적인 계기는
대내외적인 변화 압력이다.

재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와 맞물려 최고조에
달해 있는 상태다.

여기다 경영형태와 지배구조를 바꾸라는 정부의 요구는 식을 줄을 모르고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대기업들로선 뭔가 내놓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껴 왔다는 얘기다.

그래서 "비전 2003"을 만들었다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계획에 눈길이 가는 건 전경련이 이런 압력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보다 발전적인 전략을 제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경련은 우선 대내외적 요구사항에 대해 철저한 반성을 바탕으로 한
개혁을 실천키로 했다.

동시에 경제회생 프로그램과 우리 경제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할 계획이다.

반성의 결과는 전경련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단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전경련은 "재계가 먼저 변한다"는 아젠다를 설정했다.

그래야 믿음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기업윤리헌장을 개정한 이유와도 맞물려 있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건전성을 국제수준으로 높여야 생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민들이 재계를 불신하면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전 2003"이 "미래 지향적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중점을 둔 것도 같은
이유다.

전경련은 그동안 일회성 자선.기부에 그쳤던 대 사회활동을 "생산적인
사회공헌"으로 전환시키기로 했다.

개별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소외계층의 자립기반을
다지는 지원사업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가칭 "사회교육원"을 부설기관으로 설립해 <>실업자.소외계층의
자립 지원 <>근로자 재교육 <>중기 근로자 능력개발 교육 등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김우중 회장은 이와 관련해 "10원을 내도 좋으니 전 회원사가 참여하는
활동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기업에 준조세같은 새 부담이 돼서는 안된다"
는 원칙을 밝혔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경련의 사회공헌활동은 각 기업들이 세전이익의 1%를 사회공헌
회계로 떼놓았다가 필요할 경우 공적활동에 쓰도록 하는 일본 게이단렌의
"퍼센트 클럽" 형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신뢰받는 경제단체로 이미지를 굳히면서 전경련이 역점을 두기로 한 일은
바로 "민간 주도의 경제회생"이다.

연내에 확실히 외환위기를 벗어나도록 하는 동시에 21세기를 담보할 새로운
성장전략을 마련하는 일이다.

"비전 2003"은 이를 위해 단기.중기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역내 협력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기전략은 경상수지 흑자기조 정착과 금융기능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상수지 확대를 위해 범경제계 차원의 수출총력체제를 구축키로 했다.

자본재 국산화 및 구입 확대 운동도 주도키로 했다.

금융기능 정상화에 있어서는 대형 선도은행을 추진하는 동시에 가칭 국제
금융연구센터를 설립해 국제투기자금의 시장교란에 대한 대책을 공동
연구키로 했다.

장기계획의 경우는 시장기구 완성과 민간주도형 경제시스템 구축이 목표다.

새로운 성장원천을 찾아 한국경제의 진로를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오는 9월까지 시안을 작성, 연내에 "21세기 전경련 경제비전"을
발표키로 했다.

이와 동시에 민간차원에서 동아시아 경제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한.중.일 자유무역협정의 여건을 조성하고 일본 게이단렌 중국 공상련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 등과 연계해 동북아 경제협력회의를 구축할 예정
이다.

단기정책을 통해 외환위기를 탈출하고 시장경제적인 경제비전과 지역내
민간경제협력 강화를 통해 장기적인 성장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것이 전경련의
"경제비전"인 셈이다.

전경련은 이같은 비전을 바탕으로 당장 올해부터 민간 경제계의 자율적인
개혁을 주도할 계획이다.

그동안 고 최종현회장의 잔여임기를 맡는 과정에서 "내가 정말 회장이
되면"이라는 말을 자주해온 김우중 회장이 이같은 야심찬 비전을 어떻게
꽃피울지 주목된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