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수백만달러의 수출선을 확보하고서도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과 미국에서는 하루빨리 신용장(L/C)을 개설하자고 성화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회신만 거듭하고 있다.
그는 오늘도 이은행 저은행 문을 두드리지만 헛일이다.
김 사장은 IMF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잘 나가던 중견기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이동식주택을 개발, 한때 연간 2백억원어치 이상을
수출했다.
지난 87년부터 91년까지 매월 20억원 정도의 물량을 일본에 수출했다.
이때가 김 사장의 전성기였다.
당시 김 사장이 개발한 "이동식 가라오케" "이동식 커피하우스"는 일본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아 만드는 대로 팔려나갈 정도였다.
김 사장은 해외시장에서의 여세를 몰아 국내시장 공략에 나섰으나 관련법령
의 미비로 시장을 개척하기 어려웠다.
97년에야 이동식 건물에 대한 법령이 만들어졌고 그나마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IMF사태전에는 필리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5백만호 주택건설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도 왔다.
필리핀 정부는 김사장이 개발한 이동식주택이 장점이 있다고 보고 얼마든지
수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물량을 공급할수 있었다.
그러나 IMF사태는 그의 꿈을 빼앗아가 버렸다.
가지고있던 여유자금으로 사옥을 짓겠다고 땅을 산 것이 실수였다.
거래선의 부도로 한순간에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자재값이 폭등했다.
현금없이는 자재를 제때 공급받을수 없었다.
들어오는 돈은 외상값 값기에 바빴다.
필리핀쪽과 트려면 목돈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여 동안 그는 자금이 될만한 곳은 안 찾아간 곳이
없었다.
싯가 10여억원에 달하는 부동산 담보가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담보액의 70% 정도는 빌릴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은행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급한 마음에 사채도 빌려봤다.
그러나 액수도 얼마안되는데다 엄청난 이자때문에 큰 손해만 입었다.
마지막 희망을 건 곳은 정부와 지자체가 중소기업에게 대출을 해주기 위해
조성한 중소기업육성자금.
그는 강원도의 추천장을 받아 은행을 찾았으나 은행측은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요구했다.
그러나 보증기금측은 "보증한도가 다 찼다" "관할지역이 아니다"며 손을
저었다.
김 사장은 이제 정부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장관들은 입만 열면 유망중소기업지원을 되뇌이고 있으나 금융기관에 가면
전혀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그는 최근 자신의 심경을 담은 책을 냈다.
억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데 없는 김사장으로서는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래서인지 책 제목도 다소 자극적인 "개같은 세상"이다.
말뿐인 중소기업 육성, 공무원의 복지부동, 은행의 이기주의에 대해
하고싶던 말을 책에다 다 쏟아부었다.
"반도체 자동차산업만이 수출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소기업이 우월한
아이디어로 해외시장을 개척했는데도 국내에서 생소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김 사장의 절규는 지금도 메아리없이 계속되고 있다.
(0345)499-5551.
< 김태완 기자 twki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