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신상품을 매장에 내보낸지도 그럭저럭 한 달이 지난 요즘.

코끝이 빨개질 정도로 싸늘한 늦추위에 옷깃을 여미며 출근했다가 책상에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칠월 삼복더위를 떠올려 본다.

한여름날의 소비자들을 멋지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여름상품 디자인에
몰두해야 하는 처지가 우습다.

냉온탕 목욕법이 건강에는 최고라고들 누가 그랬던가.

이렇게 "계절의 목욕탕"에서 확실한 냉온욕을 즐기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점도 있을 것이라고 자위해 보기도 한다.

디자이너들은 추운 날씨에도 패션거리라는 압구정동을 한껏 즐긴(?)다.

이 계절의 유행과 느낌을 자신의 "감성 은행"에 저축해 두었다가 돌아오는
뜨거운 여름에 겨울상품을 준비할 때 더 요긴하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시점에 두 계절을 즐길 수 있는 디자이너의 생활은 이래서 다른 직업인들
이 가져보지 못하는 짜릿한 쾌감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함과 멋이 공존한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송이보다는 방금 터질듯한 꽃망울이 더 예뻐 보이듯이
겨울철 두꺼운 옷들 속에 군데군데 보이는 봄옷들을 쳐다보며 마음속으로
미소지어 본다.

또 우리 고객이 저 꽃망울들을 더 사랑해줄 수 있는 묘안은 없을까 가슴
조이기도 한다.

두꺼운 겨울을 벗고 산뜻한 봄을 입을 수 있도록 오늘은 어디 꽃집에라도
들러보고 싶은 날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6일자 ).